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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마샬의 <지리의 힘> "송유관 하나로 유럽을 지배하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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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해석하는 새로운 도구, 지리

인류 역사를 조망하는 다양한 색깔의 안경이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총, 균, 쇠가 인류 역사의 주인공이었고,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은 소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들 모두 각자의 관점으로 인류 역사를 훌륭하게 조망하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그들이 제시한 격식 있는 안경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를 배우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점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작업은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은, 그것들과  더불어 세계를 해석하는 새로운 도구로써 지리적 관점을 제시한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유라시아 대륙,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모습은 오랜 시간 지리적 환경에 지배받으며 자연과 소통해온 결과물인 것이다. 국가를 구분해주는 바다와 산맥, 사막, 그리고 강까지 우리는 자연환경과 지리에 종속되어 각자의 얼굴로 국가를 발전시켰다. 자연에게 묻고, 자연에게 답하며 자연과 함께 조화로운 삶을 살아온 것이다.
 

 

세계 각국을 뛰어다니다.


오랜 기간 기자로 활약해온 저자의 약력이 돋보인다.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들을 두발로 누비며,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관찰한 것이다. 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는 내전이 끊이질  않는지, 미국은 어떻게 반세기 만에 세계 초일류 강대국이 됐는지 등에 관한 지리적 해석은 기자의 직업 특색이 명료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처럼 끝없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들추어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의 논리를 객관화하기 위해 한정된 과거만이 들추어질 뿐이다.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에 집중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사태나 극단주의 IS, 중국의 해상 진출, 북극을 두고 벌어지는 국가 간의 눈치싸움 등이 소개된다. 지리로 출발한 텍스트는 세계 사회의 정치적 단면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송유관 하나로 유럽을 지배하는 러시아  

러시아로 가보자.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광활한 땅덩어리를 소유한 국가 중 하나이다. 광활한 대지 자체가 러시아의 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면적은 척박한 환경으로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위치를 보면 더욱 명징하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서쪽, 즉 유럽 부근에 치우쳐져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면서 국제사회의 많은 비난을 유발했다.(강제라기보단 주민 투표를 통해 합병되었으며, 크림반도의 주민의 대다수는 러시아계 사람들이다.) 러시아의 해상 항로 진출을 위해 크림반도는 중요한 거점으로, 크림반도는 러시아에게 막대한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무리한 강제 합병은 국제 사회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일부 국가와 단체에서는 여전히 크림반도의 강제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도 러시아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러시아로부터 출발한 송유관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국가들에게 가스와 석유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러시아가 송유관을 막아버린다면 유럽의 겨울은 혹독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러시아 송유관에 의존력이 높은 유럽 국가일수록 러시아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모습이지만,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결국 러시아의 광활한 땅덩어리가 품은 천연자원이야말로 러시아의 힘과 권력을 대표하는 일등 공신으로, 세계를 대상으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북극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연일 따뜻해지는 기후는 북극의 얼음을 엄청난 속도로 녹이고 있다.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얼음으로 닫혀있던 해상 경로가 열리고 있으며, 러시아는 해상 경로 확보를 위해 바닷속까지 들어가 자국의 깃발을 꽂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 나라의 지리적 위치와 자연환경은 곧 그 나라의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획득된 권력은 국제 사회에서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도덕과 정의에 대한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탐욕으로 완성된 아프리카의 국경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가보자. 이곳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내전은 유럽의 식민지 정책으로 탄생한 비극의 시나리오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국가 간 경계선을 보면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다. 산맥과 강을 경계로 자연적으로 분리되어야 할 국가 간의 경계선이 유럽 국가들의 탐욕에 의해 지형적인 고려 없이 땅따먹기 식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렇게 그려진 인위적인 경계선은 끊임없는 내전과 학살, 그리고 이념적 갈등을 야기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다양한 부족이 모여서 살던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에 의해 합쳐져야 할 것들이 나눠지고, 나눠져야 할 것들이 합쳐짐으로써 아프리카 지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놓았다. 1994년 르완다 발생한 ‘르완다 대학살’은, 100일 동안 100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오만한 유럽 제국주의가 야기한 참극이었다. 지리와 환경적 요소는 섞일 수 없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분리시켜주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리와 환경을 극복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은 소중한 생명들을 무의미하게 희생시키는 악마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언제나 자연을 지배한다고,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이 책의 원제 <Prisoners of Geopraphy>처럼 우리는 언제나 지리와 자연환경에 의해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

전 세계의 지리를 조망하며 거시적 관점으로 이 책을 읽노라면, 우리나라의 작은 땅덩어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세계는 급변하고 환경은 예측 불가능한 소용돌이로 우리를 이끌지만, 우리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허상은, 허상에서 현실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가진 우리만의 특별함은 무엇인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땅에서 우리가 키워내야 할 것들은 과연 무엇인 걸까? 좁은 땅 안에서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는 시간들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것일까?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지리의 한계를 직시함과 동시에 돌파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지리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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