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명품일기 2021. 7. 6. 22:19
얼마 전 유재석의 유퀴즈에도 출연했던 박준 시인은 밀레니얼 세대 작가 최초로 50쇄를 돌파한 문단계의 아이돌입니다. 2012년에 출간했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수록된 시 중,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어 소개해 봅니다. 박준 시인의 말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내가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 만나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호우주의보 박준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미인은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를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꼭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용서 같았다 이발소에 처음 취직했더니 머리카락을 날리지 않고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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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시 명품일기 2019. 11. 1. 19:15
그때 왜 김남기 저 사람은 거짓말을 너무 좋아해. 저 사람과는 결별해야겠어,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나의 수많은 거짓말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저 사람은 남을 너무 미워해, 저 사람과는 헤어져야겠어,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내가 수많은 사람을 미워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저사람은 너무 교만해, 그러니까 저 사람과 그만 만나야지,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나의 교만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저사람은 너무 이해심이 없어, 그러니까 저 사람과 작별해야지,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이 사람은 이래서, 저 사람은 저래서 하며 모두 내 마음에서 떠나보냈는데 이젠 이곳에 나 홀로 남았네. 2019/10/26 - [시] - [좋..
독서/시 명품일기 2019. 10. 26. 01:01
시를 반복해서 읽고 느끼고 외우다 보면 닫혀있던 미지의 세계가 기습적으로 밀물처럼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삶이 농밀해질수록 시를 읽는 즐거움은 배가되고 그렇게 시를 노래하다 보면 시는 많은 것들을 열어준다. 시를 노래하는 것은 시인만의 할 수 있는 어떤 고귀한 활동이 아님을 이제야 나는 안다. 시는 시라는 형식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온전한 모습의 해방된 나 자신과 마주한다. 대체적으로 나는 짧지만 강렬한 충격를 주는 시를 좋아한다. 집중력도 부족하거니와 짧은 시는 외우기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류시화가 엮은 시집 에서 소개된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시 는 내가 입으로 중얼거리는 시들 중 하나다. 이 시는 나에게 일종의 쾌락이자 통쾌함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아무런 휘장이 없어도 빛내주기 때..
독서/시 명품일기 2019. 10. 7. 22:52
미르자 갈리브는 19세기 인도 무굴제국에서 페르시아어 및 우르두어로 시를 쓴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시인이다. 류시화의 책 에서 시인 미르자 갈리브를 만났다. 비록 이 책에서 몇 안되는 갈리브의 시를 만났지만, 갈리브가 쓴 시들은 간결하고 독창적인 면이 있어 읽자마자 반해버렸다. 짧게는 두 줄, 길게는 고작 네줄이다. 그러나 짧은 시 속에 번개처럼 번뜩이는 통찰이 있다. 갈리브는 어렸을 때부터 언어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그의 삼촌에 의해 길러졌다. 갈리브는 열세 살 때 결혼하여 일곱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어느 누구도 유아기를 넘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갈리브 앞에 위치한 '미르자'라는 명칭은 무굴 황제로부터 받은 칭호다. 그는 무굴 제국의 왕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