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양귀자의 <모순> "현실감 넘치는 웰메이드 소설"

728x90

 

여주인공 안진진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부르짖는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그녀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여자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건달 흉내를 내는 철없는 동생과 멋대로 집을 드나드는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살뜰히 뒷바라지하는 그녀의 어머니도 있다. 어찌보면 콩가루 집안처럼 보이지만, 여주인공의 감정 라인을 쫓다보면 가족이란 결국 몇마디 말로는 압축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건달 흉내를 내는 동생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느끼고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에게서 미움보단 사랑의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 그녀의 어머니는 머리 위로 날아드는 접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도 갖추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모순이 있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다. 지리멸렬한 그녀의 가족과는 다르게 쌍둥이 이모의 가족은 밝고 화사하고 유복하다. 반듯한 이모부와 고급 호텔에서 외식을 하고, 자식들은 외국에서 공부 중이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이모는 따뜻한 마음씨와 애정까지 넘친다. 그러나 이모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주인공 안진진과 그녀의 가족에게는 없었다. 이모와 엄마는 모든 것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그러나 한명은 시장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삶의 끝자락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다른 한명은 편안함 삶을 즐기며 유유자적한다.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결국 같은. 나의 어머니, 나의 이모. 이처럼 모순되는 상황이 또 어디있을까? 차라리 이모가 나의 어머니였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안진진을 나는 이해한다.

주인공 안진진에게는 두명의 남자가 있다. 첫번째 남자는 김장우. 그녀는 그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모든 말과 말 사이를, 모든 행동과 행동 사이를 언제나 웃음으로 연결짓는다. 마치 수채화 붓으로 연푸른 선 하나를 짧게 긋듯이 씨익...’ 김장우한테는 낭만과 이야기, 그리고 잔잔한 향기가 묻어 있다. 하지만 주인공 안진진처럼 굴곡진 삶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는 나영규. 모든 것을 계획해놓고 그대로 실천하는 남자. 약간의 빈틈이나 변수도 허락하지 않는 남자다.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그가 계획해놓은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행복이자 바램이다. 모든 것이 분명한 나영규. 그러나 대체로 모든것이 불분명한 김장우. 주인공 안진진은 이들을 모두 좋아하지만, 결국 선택은 단 한명일 수밖에 없다. 선택의 끝자락에선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또 하나의 모순을 읽어낸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저자 양귀자의 창작노트에 쓰여진 편린들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우리들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란성 쌍생아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자각.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우리.” 라고. 내 생각도 작가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겉보기에 삶은 뚜렷한 명암으로 구분되는 것 같지만, 결국 이것들은 홀로 서 있을 수 없다. 행복이 없으면 불행도 없고,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아서 단독으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불행을 느끼고, 불행을 느끼는 동시에 행복도 느낀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삶이란 모순이다.

소름끼칠만큼 정확한 삶에 대한 진단. 그리고 매순간 내 앞에 나타나는 모순의 순간들. 선택의 연속. 그리고 선택이란 한 쪽을 버리고 한 쪽을 취하는 것이 아닌, 양쪽을 모두 포섭하는 행위란 것. 그리고 이것을 취함과 동시에 이것을 잃게 되고 저것을 버림과 동시에 저것을 얻게되는 모순이다. 흰바탕 위에 써내려가는 글조차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백을 조각하는 중인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장자의 호접지몽. 지난 밤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잠에서 깨어나보니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것인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어렵다는 그의 말이 더욱 선명하게 마음에 그려진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