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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불행한 자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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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은 우리가 이해하는 시(詩)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문예 창작 전반을 아우르는 큰 원리를 다루고 있다.”

문예 창작 장르가 다양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 시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 대한 고찰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으로 크게 비극과 서사시가 이에 해당한다. 각 장르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비극의 우수성을 이끌어 내는데, 그리스 신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읽기 쉬운 편은 아니다. 그리스 원전을 번역한 이 책은 본문만큼 주석이 달려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의 시작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부터 출발한다. 플라톤의 경우 모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데아처럼 이성을 통한 불변의 진리를 추구했던 플라톤의 경우 모방은 그저 감각 기관을 사용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모방이란 인간 삶 그 자체이자 본능으로써 예술, 조각, 음악, 문예 등 모든 것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도 본능적으로 자기 부모를 따라 한다. 즉, 모방이란 삶과 동의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모방의 부정적 기능을 강조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하는 행위를 통해 비극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그의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서 곱씹어 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위대한 철학자였는지를 단박에 깨닫게 해 준다. 모방, 비극, 희극, 삶이 어우러진다.

“비극은 보통 이상의 인간을, 희극은 보통 이하의 인간을 모방한다.”

“비극과 희극의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희극은 우리만 못한 인간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우리보다 더 나은 인간을 모방하려 한다.”

우리가 미디어 매체의 예능이나 개그, 엉뚱함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 장면 자체에 보통 이하 존재들의 희극적 요소가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모 안에서 펼쳐지는 만들어진 희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높은 위치로 끌어올린다. 관음적 요소와 함께 시청자를 보통 이상의 인간, 더 나은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의 처지를 느껴보는 것이야말로 윤리적 인간이 갖추어야 할 훌륭한 미덕이지만, 나 자신은 그러한 아픔과 고통에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속에서는 희미한 환희가 일어난다. 보통 이하의 인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희극적 모방은 이처럼 단순한 사실로 수렴한다. 자신의 위치보다 불행한 자들을 보며 우리들은 희열을 느낀다.

반면 비극은 개인의 시선이 높은 곳을 향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비극적 요소는 인간 혹은 사물 속에 내재하는 본원적 속성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가깝다. 보통 이상의 존재를 향하고자 할 때 숨어있던 비극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닿으려고, 따라가려고, 그곳으로 가려고, 그렇게 되려고, 하면 할수록 보통 이상에 대한 모방은 우리를 비극적 존재로 타락시킨다.

“비극의 즐거움은 연민과 공포에서 비롯되며, 시인은 모방으로 이런 즐거움을 산출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극찬한다.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이 훌륭한 비극에 걸맞은 요소들을 다양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자 악전고투하지만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반전적 요소. 그리고 완벽한 개연성과 적절한 길이, 그리고 듣기만 해도 스며드는 연민과 공포의 감정은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즉, 시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즐거움에 있다. 즐거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자 삶의 유희다. 즐거움이 없다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동의어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흥미보다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읽히는 것이 더 어울리는 책이다. '비극과 서사시의 일반적인 본질과 그 종류, 구성 요소의 수와 성질, 성공과 실패의 여러 원인, 비평가들의 비판과 그에 대한 해결에 관해서 등등..' 처럼 문법적 검토를 수행하는 학문에 대한 고찰의 결과물이 바로 <시학>이다. 이야기의 구성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지만 원전의 해석으로 덧붙여진 방대한 주석은 조금 주저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은유에 능한 것이다.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천재의 징표이다.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Page.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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