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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의 <쾌락독서> "신명나는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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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관한 책을 집어 들 때면 언제나 즐겁다. 그것은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더불어 그것이 바로 독서란 사실은 나를 흥분시킨다. 책을 읽게 된 계기부터 취향, 그리고 독서 습관, 독서에 대한 생각까지 듣다 보면 ‘세상에는 참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너무 당연한 깨달음은 물론,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대체로 엇비슷하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모습은 나에게 있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일종의 쾌락이다. 그리고 이러한 쾌락은 독서를 통해 온전히 실천된다. <쾌락 독서>, 책 제목 참 잘 지었다.

저자 문유석은 어릴 때부터 수많은 책을 섭렵한 독서광이었다. 그가 독서에 빠진 이유는 단 하나,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거창한 이론이나 청소년이 읽어야 할 필독도서 따위가 아니다. 저자 문유석에게 독서란, 오직 재미를 위한 일종의 놀이였다. 요즘에야 직관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굳이 독서를 통한 재미가 1순위는 아니겠지만, 저자의 어린 시절만 해도 즐길거리는 다양하지 않았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친구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아니라, 친구의 책장이 부럽던 시절이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호르몬 과잉 분비로 인해 야한 장면을 찾아 다양한 책을 섭렵했다고 고백한다. 중요한 포인트도 귀띔해주는데, 대표적으로 우리가 알던 <춘향전>은 심하게 왜곡(?) 되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로미엣과 줄리엣>도 마찬가지라고... 급기야 고전 명작이라고 일컫는 <보바리 부인>에서는 제목에 부인이 들어간다고 해서 다 그렇고 그런 소설은 아니라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뒤라스의 <연인>보다 백배는 더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명작이라고 소개한 이효석의 <화분>이 등장하는데,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단숨에 교보문고로 달려갔건만, 책이 없다.. “저기, 문유석 판사님, 책을 소개해 주시려면 현재 진행형인 책들을 좀 소개해주시면 안 되나요, 네?”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저자 문유석은 책은 그저 책일 뿐 경험하는 세계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 책을 통해 세상을 조망하는 일은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의 세계를 확장시켜주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책을 통해 삶의 진폭이 커지고, 생각 가능한 범주 안으로 조금씩 세상의 모습들이 하나둘씩 들어올 때, 비로소 저자의 말처럼 “집착하지 않고, 가장 격렬한 순간에도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고, 놓아야 할 때에는 홀연히 놓아버릴 수 있는, 삶에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런 태도...” 로 삶을 여행하듯 여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삶과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항상 평화로운 기운이 내 안에 머무르는 상태 말이다. 경험으로만은 결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 문유석이 스치듯 추천한 책이지만, 아마도 해당 주제에 대해 수십 권의 분량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들어찬 마음을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선의 반대어는 악이 아니라, 바로 독선이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며, 인터넷 창만 열어도 독선으로 가득 찬 세상과 쉽게 마주한다. 그리고 독선은 또 다른 독선으로 모습만 바꾼 채 이동한다. 그래서 나는 아래 문장들이 좋다.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 하다.

“선의도 탐욕만큼 위험할 수 있다.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나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당신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쾌락 독서>에서 독서란 재미를 추구하는 하나의 작은 행위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말처럼 <쾌락 독서>는 어깨에 힘 빼고 쓴 에세이임은 분명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힘주고 쓴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책의 1% 정도? 책의 중후반부에 집중되는 1%의 부분이 나는 좋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렇고, ‘판사의 관점에서 읽는 <속죄>’가 그렇다. 책 읽는 것 자체가 재미를 위한 목적이든,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든 크게 상관없다. 모두 가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분명한 건 한 달에 한 권이든 1년에 한 권이든 독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이 사실은 변함없다. 그러나 독서 없는 삶이 가능한 사람이 있긴 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인물들 중에는 단 한 사람, 그리스인 조르바 정도면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부모고, 자식이고, 친구였을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악마였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무지가 곧 악인 것이다.

-Page.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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