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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정말 재밌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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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는 집단 학살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비추어볼 때 지구에 출현한 생물들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집단 학살을 자행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특정한 이념, 종교,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등을 명분 삼아 우리가 아닌 그들을 악의 무리로 규정짓고 무차별적인 살상을 저지른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는 집단 학살이란 거대한 주제로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약 650페이지 분량의 꽤 두툼한 책이지만,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의 박학다식함과 스케일에 박수를 보낸다. 더욱이 저자가 던지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메시지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 없이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단편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얄팍한 소설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내전이 발발한 아프리카에서 초인류가 탄생한다. 원시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프리카 피그미족 안에서 초인류가 태어난다. 현생 인류와 비교했을 때 초인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압도적인 지성과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 6감의 획득, 그리고 무한한 도덕의식이 그것이다. 초인류의 능력은 현생 인류가 오랜 기간 구축해 놓은 인프라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특히 암호화된 시스템이 무너질 경우 권력자들은 지배자에서 피지배자로 위치가 전복될 가능성이 있다.

지상 최고 권력기관인 미국 백악관은 그들이 보유한 정보력으로 초인류의 탄생을 포착하고 그가 가진 위험성을 말살시키려 한다. 추악한 음모로 가득한 일급비밀 작전이 전개되고, 작전에 투입된 사람들은 도구처럼 이용되고 버려진다. 우리가 믿고 있는 국가에 대한 환상은 권력자들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 학살까지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의 모습은 인류 전체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줄다리기를 벌인다. 반대로 백악관에 맞서 초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작전도 펼쳐진다. 초인류의 압도적인 지성에 도움을 받으면서 아슬아슬하게 포위망을 뚫고 백악관의 감시망으로부터 탈출한다. 여러 차례 반격을 가하며 백악관에게 끊임없이 경고를 가한다. ​

이 소설의 백미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애초에 잔혹성이 내재된 생물인 것일까?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집단 학살을 행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잔혹하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반대로 인간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잔혹성과 더불어 선한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에도 선한 영혼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인간의 잔혹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잔혹함의 반대편에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굵직한 주제뿐 아니라,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백미는 현실 세계를 충분히 반영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내전의 속살(르완다 내전 - 투치족/후투족), 일본 극우와 과거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비판, 미국 제일주의의 권력자들의 추악함, 그리고 의학적 사실들까지 소재에 대한 깊은 연구가 엿보인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데 읽다 보면 책에 빠져들어 어느새 새벽 시간과 조우하는 날들이 많았다. 몰입감과 흡입력은 여태껏 읽었던 소설 중에 단연 최고라 말할 수 있다.(한자리에서 650페이지나 되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 분도 있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를 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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