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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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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에세이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노라면 단단했던 삶의 껍질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시인의 문장 속에는 마법처럼 강력한 힘이 숨어있다. 그저 읽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행복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행복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경험은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

실제로 우리 자신은 문제보다 더 큰 존재이다. 그것을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라.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 문장을 반복하면 강력한 파동이 생겨 마음이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 만트라의 원리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만트라는 마음(만)+도구(트라), 즉 ‘마음 도구’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마라.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원주민 중 라코타 수우족은 고통을 겪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신과 가장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아플 때 에고의 껍질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왜 나에게 이것밖에 주지 않는 거죠?”

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면 한 편의 글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영감은 그저 매일 계속 쓰는 것이다.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면서 슬프게도 많은 의미가 상투화된 것이다. 어떤 부분이 상투화된다는 것은 그것의 소중함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언어가 의식을 바꾸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모국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매장’과 ‘파종’의 차이는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I like me best when I`m with you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 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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