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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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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지금 이런 말을 늘어놓고 있다.

“무릇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세상도 생각해야 하고 국가도 생각해야 하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게다. 너 역시 그렇게 빈둥거리면서 지내는게 좋을 리가 없잖느냐.(....)”​

“그렇습니다.” 다이스케는 대답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설교를 들을 때마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적당히 둘러대는 습관이 생겼다. 다이스케가 보기에 아버지는 매사 어중간한 사고로 혼자 마음대로 단정 지어 밀어붙이기 때문에 눈곱만큼도 본질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타적인가 싶으면 어느새 이기적인 사고로 바뀌어 있다. 젠체하며 거침없이 말하지만 결국은 시종 잡담일 뿐이다. 애초에 그러한 아버지의 기세를 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또한 불가능할 게 분명하므로 처음부터 될 수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 -

이는 소세키의 소설 <<그후>의 주인공 다이스케가 아버지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뭐라도 일을 해라’라며 설교를 듣고 있는 장면이다. 다이스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말을 듣고 있는지 상당히 상세하게 묘사된다.

다이스케는 소세키의 소설에등장하는 이른바 ‘고등유민’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과 인류를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이 언뜻 보면 이타적인 삶을 장려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이기적인 헝그리 모티베이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하지만 다이스케는 굳이 아버지와 부딪히지 않고 적당히 넘기면서 가능한 한 말을 하지 않는다. 가치관이 결정적으로 어긋나는데도 직접 부딪히기보다 체념하고 대응한다는 점에서도 고등유민다운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서른이나 되어서 한량처럼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볼썽사납구나.”
다이스케는 결코 자신이 빈둥빈둥 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일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고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귀한 부류라고 여길 뿐이다.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실은 딱하기만 하다. 아버지의 미숙한 두뇌로는 이토록 의미 있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삶이 자신의 고차원적 사상과 감정에서 결정을 이루어 나온 결과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니 말이다.

-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 -

점점 더 심해지는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며 다이스케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는 불손하다고 할 만큼 아버지를 멸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감정에도 다소 일리는 있어 보인다.

아버지가 설교의 마지막에 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꺼내든 말은 결국 남 보기에 ‘볼썽사납다’는 체면의 문제다. 다이스케가 일을 하면 자신의 무언가가 더러워진다고 생각해 주저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버지의 가치관은 피상적이고 세속적일 뿐이다. 두 사람의 가치관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다이스케가 아버지를 ‘미숙한 두뇌’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다이스케는 그 후 오랜 친구인 히라오카와 재회하는데 이때도 일하는 것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자네는 돈에 쪼들리지 않으니까 그러는 걸세. 생계가 곤란하지 않으니 일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게지. 소위 부잣집 도련님이니까 그런 여유 있는 소리를 하는 거라고!”
다이스케는 히라오카가 약간 얄미워져서 급히 말을 끊었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일할 바에는 생계 이상의 가치를 얻어야 명예로운 걸세. 모든 신성한 노동은 먹기 위해서만이 아니라네.(......) 다시 말해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성실하게 임하기 어렵다는 의미지.”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군. 먹고살기 위해서니까 열심히 일할 의욕이 생기는 거네.”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실하게 일하기는 어렵다니까.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거라면 결국 먹고 사는 것과 일하는 것 중 어떤 게 목적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먹고사는 거지.”
“그것 보게나. 먹고사는 게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수단이라면 먹고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찾는 게 당연 하잖은가.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을 하든, 어떻게 일하든 상관없이 그저 식량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겠나? 노동의 내용도 방향도 그리고 순서도 전부 다른 사람에게 제약을 받는다면 그것은 타락한 노동이라네.”

-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 -

다이스케는 헝그리 모티베이션을 강하게 내세우는 히라오카에게 일하는 것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펼친다. ‘먹고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수단’이라면 그것은 결코 성실한 노동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다이스케에게 일한다는 것은 식량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에서 사람은 빵만 먹고 살 수 없다고 말한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다이스케는 헝그리 모티베이션으로 일하는 것은 정신의 타락이며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이즈마야 간지의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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