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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일까?(탈레스/러셀/질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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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최초, 탈레스?

철학이 무엇일까? 철학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 '철학'의 최초 장소로 돌아가 본다. 거기서 우리는 철학사를 기술한 거의 대부분의 저술에서 '최초'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탈레스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버트런트 러셀은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평가하는 일에 대해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이 세계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말한 탈레스의 주장에 '철학의 최초'라는 명예를 얹어 주는 일은 "철학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려 애쓰는 초심자에게 실망만 안겨 준다"라는 것이다. 러셀은 탈레스를 "철학자보다는 과학자로서 존경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버트런트 러셀

 

철학자 들뢰즈는 버트런트 러셀을 철학자라기보다는 논리학이나 수학에 매몰된 사람으로 치부한다. 들뢰즈에게 철학의 중요한 과제는 명제의 분석보다는 개념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내재성의 철학이니 유목민의 철학이니 하는 말들도 모두 개념의 창조와 연관된다. 러셀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경험이란 것이 들뢰즈에게는 오히려 철학이 생동하는 중요한 광장으로 등장한다.

질 들뢰즈

 

철학은 내용이 아닌 사유의 활동에 있다.

탈레스, 러셀, 들뢰즈 등은 모두 철학자이지만, 또 모두 상대방을 철학자가 아니라고 서로 비판한다. 철학에서 이런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철학'이 특정한 '내용'으로 규정되지 않고, 철학적인 '활동'으로만 되어 있다는 뜻이다. 풀어서 말한다면, 철학은 앞사람이 개척하여 남긴 등산로를 누가 더 빨리 오르느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등산로를 오르는 방법과 기술, 혹은 몰두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하는 일이거나, 산을 누리는 방법 자체에 관한 활동이다. 산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하는 활동이다.

다시 러셀과 탈레스로 가 보자. 러셀이 탈레스를 철학자보다는 과학자로 부르는 것이 낫겠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아마 탈레스가 한 '철학적 활동'보다는 탈레스가 주장한 그 '명제의 내용'에 집중해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의 근원'에 대하여 탈레스가 한 '생각'에 집중하지 않고, '물'이라는 내용에 집중하여 한 평가다.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로 만든 것은 만물의 근원에 대하여 물이라고 한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의 주장이 나올 수 있도록 탈레스 스스로 걸은 사유의 여정에 있다.

탈레스가 '최초'로 등장하기 전에 그리스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에 대하여 반드시 '신'의 존재를 떠올렸을 것이다. 모두 만물의 근원을 신이라고 믿을 때, 탈레스는 혼자서 '생각'하여, "아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말한다. 삐딱하기 이를 데 없고, 저항적이고 반항적이다. 이런 불손한 태도들을 한데 모아서 우리는 '독립적'이라고 부른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BC 624 - 546)

 

탈레스가 철학자인 점은 '물'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탈레스는 당시의 시대를 믿음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생각이 주도권을 잡는 세계로 끌고 나왔다. 인류 최초의 일이다. 그래서 그는 최초의 철학자가 된다. 이런 상식적인 설명은 나는 왜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에게는 철학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교조적인 믿음을 가지고서 마치 이데올로기 경쟁을 하듯 다른 분야들끼리 서로 상대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믿지 않는 것이다.

탈레스가 보여주듯이 철학의 탄생은 신으로부터 감행한 인간의 독립에 있다. 결국은 독립 정신이다. 믿음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그것이 진리가 되었든, 신념이 되었든, 이념이 되었든, 믿음을 갖는 일은 철학하기와는 거리가 있다. 모든 믿음은 정지한 것이고, 완벽하다고 설치는 것이고, 지나간 것을 지키는 일이고, 다가오는 것을 비웃는 일이다. 뿌리박는 일이고, 고정시키는 일이고, 정해진 틀을 지키는 일이다.

생각이 작동하는 순간 이미 정해진 모든 것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움직이게 된다. 몸은 기존의 틀 속에 있어도, 눈은 다가오는 새로운 빛을 본다. 다가오는 세계의 빛을 본 눈은 자신의 몸을 앞으로 기울게 만든다. 여기서 만들어진 기울기가 바로 누군가를 최초로 만들고 철학자로 만든다. 생각이 빚어낸 기울기, 철학의 터전이다. 인간으로서의 탁월함이 등장하는 텃밭이다. 이 탁월함은 인간을 창조자로 만들고 독립의 기풍을 선사한다.

철학은 결국 인간의 독립적인 활동이다. 그것은 생각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 최진석의 <경계에 흐르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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