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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공자보단 노자가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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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의 양대산맥 공자의 <논어>와 노자의 <도덕경>.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 두 사상가를 이해하고 연결짓는 행위자체만으로도 개인의 인생에 미치는 파급력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저자 최진석 교수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은 공자와 노자의 비교를 통해 그들의 철학적 물음과 결과물을 토대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사유를 유도한다. 동양 철학의 진수는 공자보단 노자다.

 

공자?! 나는 노자가 좋다.


공자는 인.의.예.지를 인간의 본질로 규정지으며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잣대로 인격양성에 힘쓴 반면, 노자는 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일지라도 그러한 보편적 기준과 본질적 규정을 개념화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자연의 존재 형식을 사유의 원천으로 여기며, 대비되는 것과의 관계속에서 상대론적 철학을 설파한다. 노자는 애기한다. 아무리 선의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그것이 기준으로 행사되는 한 폭력을 잉태하는 장치일 뿐이라고. 인간이기 이전의 자연의 관점에서 본 노자의 시선에는 모든 가치는 중립적이다. 

 

노자의 관계론

본질이 아닌 관계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아름답다라는 말속에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라는 단어 주위를 둘러싼 다른 것들(추하거나 더럽거나 등)으로 인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아름답다라는 것은 천년만년 아름답게 존재할 수 없으며 생각과 사회가 변하듯이 주의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면 아름다움도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행무상. 즉, 아름다운 것은 본질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름다움뿐 만 아니라 세상모든 것들은 관계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넓다는 것도 좁은 것이 있기 때문이고, 좁다는 것 역시 넓은 것이 있음으로써 표현된다. 만약 넓은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넓다면 넓다는 것은 더이상 넓지않게 되기 때문이다. 넓음과 좁음은 나선형 DNA처럼 한쌍이며 선후의 관계 또한 존재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다. 최진석 교수는 이것을 새끼줄의 꼬임으로 표현하는데 단박에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최진석 교수는 "관계론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이 세계를 보는 하나의 관점, 하나의 기준에 대한 건립을 요구하지 못한다. 반대로 본질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틀, 하나의 기준을 설립할 수밖에 없다." 는 이야기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않고 매초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앞에서 개념화하고 틀을 만들어가며 기준을 세우는 일은 개인을 생각하지 않고 맹신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끌어 버린다. 개념화한 기준을 근거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날카롭게 다투며 핏대를 세우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기준이되고 개념이된 굳어버린 것은 딱딱하고 고정되고 멈추어 있으며 죽어있는 것과 같다. 반대로 변화하는 것은 움직이며 유연하고 멈추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모하며 생명력이 넘치는 것과 같다. 경계에 서 있을때만 가능하다.
때문에 노자가 말하는 `도`는 개념이나 신념, 이념적인 것들을 덜어내고 덜어내며 또 덜어냄으로써 현상이나 경험, 실제 존재하는 것을 낮은 수준으로 여길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여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개인은 쉽게 판단해 버리거나 가볍게 애기하지 않고 항상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진실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음을, 거짓이 거짓이 아닐수도 있다는 마음속의 여백을 유지한다. 더불어 이러한 균형감의 내공은 폭발력을 터트린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념이나 개념, 신념에 갇혀서 세계를 봐야하는대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기준에 최대한 자유로운 상태로 보여지는 그대로 볼 것인가?  기준에서 자유로워 질수록 개인은 자유로운 인간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함이 옳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자유로움을 제멋대로 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상의 내용은 각자 책에서 답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읽었던 최진석 교수의 저서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인간의 그리는 무늬>,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모두 도양 철학의 같은 범주안에 놓여져 있다. 그 범주를 그룹화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 개별, 다름, 자유, 여백, 유연, 실제, 유연, 겸허, 능동, 주체, 사유, 자연, 지금, 관계, 고유 등등 모두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단어들이다. 각 단어별로 의미를 확장하면 밤을 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즉 하나의 개념이나 이념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을 연결시키고 관계짓게 하는 동작매커니즘의 한 형태로 존재한다. 다른말로 이야기하면 지식의 범주라기보단 지혜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지혜의 영역에 있는 책을 만날 때마다 즐거운 기분이 절로 스며든다. 앞으로 평생토록 경험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것들을 읽을 수 있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 행복할 따름이다.

 

배움을 행하면 날마다 보태지고, 도를 행하면 날마다 덜어진다.
덜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지경에 이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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