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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숨은 신을 찾아서>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이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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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답변조차 찾기 힘든 난제 중의 난제가 `신`에 관한 물음이다. 저자 강유원의 말처럼 그저 다 덧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뚝 끊어버리던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덧없음을 한번 밀고 나아가 보자는 것이 바로 이 책이 탄생한 이유로 보인다. 그러한 신념체계를 음미함에 있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데카르트의 <성찰>을 주요 점검대상으로 채택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아무런 종교적 믿음이 없는 신앙심 제로인 내 입장에서 생소한 내용들이 적지 않게 포진되어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가 왜 이 책을 샀지?"라는 물음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재를 포함하여 과거 역사 속에서도 절대자 `신`의 존재와 `신`에 대한 물음은 무신론자 입장에서 그저 덧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잔물감이 남는다. 신의 존재의 유무를 따진다기보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이자 철학하는 것에 대한 시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 과학, 인문, 소설, 종교 등등 어떤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고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면 반드시 만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예수이기도 하다. 즉 사람이 존재하는 곳엔 언제나 종교적인 것들이 따라붙었고 공존해왔음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고 적당한 수준에서 정리해보는 것이 훗날 믿음을 강요하려는 무리들 앞에서 나를 보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믿고 천국 가는 것이다?


저자 강유원은 기독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듣던 것과는 다르게(?)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며, 구원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바깥으로 나돌던 시선을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며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 처절한 자아성찰을 통해 인간의 무력감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절대적 무를 자각할 때, 그때 비로소 신앙이란 것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선교활동을 하던 주변인들의 주된 이야기는 '천국'이나 '구원' 또는 '그냥 좋고 좋은 것으로 그래서 해야 함' 정도의 빈약함이었는데, 저자는 자아성찰을 통해 철학하며 들여다봄으로써 그나마 신앙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하니 훨씬 믿음직스러운 텍스트로 다가왔다. 기존에 내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희미하게나마 다른 쪽으로 이끌어주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 필멸의 존재


왜 배우는가? 왜 책을 읽는가? 생각은 왜 하는가? 왜 토론을 하는가? 이러한 물음의 본질적 의미는 인간은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겸허하고 겸손한 자세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며 조금이라도 더 앎의 범위를 확장시키기 위해 배우고 읽으며 생각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다. 그저 정기적으로 십자가 아래로 발걸음을 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설명하고 재단하려든다면 맹신이라는 단어 외에 떠오르는 것은 없다. 왜 그러한 선택을 했냐는 물음에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기보다 내 안의 내 마음으로부터 다짐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함이 바람직한 모습 일터이다. 무신론자도 유신론적인 것들을 들여다봐야 하고 유신론자도 무신론적인 것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책 몇 권을 통해 신이나 그리스도교에 대해 떠벌릴 만큼 잘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떠나 신념이나 믿음의 문제에 대해 접근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 책 <숨은 신을 찾아서>의 부제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찰 성찰"과 일맥상통한다. 조금 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순간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책 제목처럼 숨은 신을 찾아보는 것도 가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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