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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규정짓는 모든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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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인가?"
"저는 쿠퍼 부인으로, 이 시의 시장 아내입니다."
"나는 너의 이름이나 남편에 대해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
"저는 사랑하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네가 누구의 엄마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
"저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나는 너의 직업을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
"저는 기독교인이며, 남편을 잘 내조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는 너의 종교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인가?"

여인은 알 수 없는 음성과의 대화 후에 병에서 회복되었고, 그 후 삶이 달라졌다.

- 류시화 -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만의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다면 삶의 역동성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보편적 가치에 함몰된 삶은 사회가 요구하는 목소리를 그저 전달하는 전달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자신을 규정하는 다양한 역할들 속에 자신을 함몰시켜 버린다. 삶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모든 존재의 가능성은 말살된다. 이러한 정신적 압제에 갇히게 되면 타인과 대화할 때 더욱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상대방을 순수한 인간 존재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특정한 역할에 충실하는지 혹은 충실하지 않는지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게 된다. 인간을 유용성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동사'로 작동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명사'로 규정짓고 있다. '동사'는 생명력을 얻지만, '명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명사'로서 고정된 역할놀이에 마침표를 찍고, 존재의 역동성에 눈을 뜰 때, 비로소 자신만의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있다. 

"너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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