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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당신은 신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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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신을 믿는 자와 신을 믿지 않는 자로 양분된다. 그렇다면 만약 신이 세상에 진실로 존재한다면 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까? 아프거나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신을 찾아가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게 되는 것일까?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마지막 문단을 요약하자면, 실존주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 스스로를 재발견해야 하는 존재이며, "비록 신의 존재에 대한 유력한 증명 자일 지라도 사람 자신 말고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명심하라고.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네 삶은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때문에 실존주의자들은 낙관적으로 사고하고 생각하며 앙가주망한다. 사르트르 역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철학자`였다.

나의 존재가 선행하고 세계는 그 다음이다.

이 책은 쉬운 언어로 표현하면` 철학적 언어로 묘사하는 수준높은 자기 계발서`이고, 좀 더 근원적으로 표현하면 `존재와 본질의 선행 관계를 토대로 실존주의적 자세를 탐구하는 철학서적`이다. 실존주의는 출발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그 테제의 출발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다. 인간은 공책과 연필처럼 어떠한 목적(본질)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본질 앞에 선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도 내가 존재하고 그 이후에 규정되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자이며 입법자로서 끊임없이 행동하며 더 높은 목적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을 잉가제한다. 또한 주도적으로 개념을 탄생시키는 인간은 높은 책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나란 존재에 대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시키며 이것이 실존주의가 휴머니즘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존주의자에게는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만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심리학자 아들러의 목적론과 일치하는 맥락이다. 원인론적 태도가 아닌 목적론적 태도로써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주제로 다시 수렴된다. 흥미롭게도 뇌과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입증된 바 있다. 미국 프리드박사가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부위를 찾기 위해 연구하던 중 우연히 뇌의 앞쪽 부분이 웃음을 유발시킨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해당 부위에 자극을 가하면 사람은 웃게 되는데 그러면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목적을 가지고 웃으면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른다는 의미다. 뇌도 실존주의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이란 인간 자신 속에 있으며 이보다 더 낙관적인 이론은 없다

인간을 행동으로서 정의하는 실존주의적 자세에 적극 찬성한다. 신의 존재처럼 어떠한 불가항력적인 것 앞에 인간의 존재가 이미 규정되고 보편화되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말살되고 그것으로 판단 된다면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운명이란 인간 자신 속에 있으며 이보다 더 낙관적인 이론은 없다"는 우리가 어떠한 것이든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이며, 거기에 참다운 휴머니즘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어렵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스리슬쩍 개인의 삶을 파고들어와 나를 이세상에서 저세상으로 옮겨놓을 때 또 다른 세상이 없는지 호기심을 유발하는 힘, 그것이 철학의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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