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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성장과 성숙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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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단 현실 좌표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물정에 밝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 세상 물정에 밝지 못하면 철없는 사람으로 지적질의 대상이 된다. 미대 진학을 꿈꾸는 자식은 돈벌이에 적합하지 않다는, 현실을 모른다는 이유로 그들보다 더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존재들 앞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꿈 많은 철부지로 타락한다. 
사회학자 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진짜 누구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저자가 묻기 위해 던지는 주제들은 친숙하다. 세속, 명품, 불안, 열광, 성공, 명예, 노동, 개인, 종교 등처럼 소주 1병은 거뜬히 비울만한 친근한 안주거리들로 책의 내용이 채워져 있지만 그 내용 면면을 들여다보면 주제를 올려놓을 곳은 술집 테이블 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품위 있고 격조 있는 내용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자본주의에 의해 잠식당해버린 종교의 순수하고 거룩한 활동이 소멸되어 자본이 곧 신이 되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막스 베버, 필 주커먼, 발터 벤야민의 주옥같은 저서들을 소개하지만, 그 내용이 결코 어렵지 않고 흥미롭다. 사회학의 진면목은 바로 이러한 점인데, 어려운 역사속 개념과 이론들을 현대의 언어로 친숙하게 재창조해낸다. 이러한 재창조의 작업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내용은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에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혼란스럽다. 혼란 속에 방치된 개인은 이해하기 쉬운 보편적 가치들을 향해 손을 뻗치고 소화시킨다. 흔히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인데 저자 노명우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부른다. 부유하지 않은 집의 자식이 하고 싶다고 해서 미술전공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차라리 대기업 취직이 수월한 수도권 이공계열 4년제 대학 진학이나 공무원 시험이 훨씬 더 상식적일 것이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상사의 잘못을 지적질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식적이다. 이렇듯 자본의 노예가 되고 상사를 비위를 맞추는 것이 상식이라고 통하는 사회에서 사회학은 어려운 말투로 장식된 양서들을 친숙한 언어로 바꾸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전복시킬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자처한다.

상식이 모이면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탄생한다.


저자 노명우는 갖가지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탄생한다고 한다. 몰상식이 팽배한 사회는 부정으로 채워지며 부정으로 채워진 사회는 웃음소리보다 비명소리에 더 익숙하기때문에 웃음소리를 쫓기보다 비명소리를 먼저 피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상식적인 것에 바람직함을 더하는 것이 양식이라고 한다. 상식에서 양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재창조의 작업이 사회학자의 철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은 우리 삶의 언어로 묘사하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그 내용은 깊이와 품격이 있다.

 

성장이 생물학적 현상이라면 성숙은 행동학적 현상이다.

좋은 삶이란 당연한듯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상식적인 것들로 채워지는 삶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합리하고 공평하지 못한 것이 당연시되는 세속적인 세상 냉소주의로 일관하며 자기계발서나 읽으며 위로만 해대기에는 마음 한편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다. 성장한 사람들이 외쳐대는 세상 물정의 진실은 결국 성숙의 결핍이다. 경험과 나이의 결과물로서의 생물학적 성장은 성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성장이 생물학적 현상이라면 성숙은 행동학적 현상인 것이다. 행동학적 활동이 수반되어 세상 물정으로 수렴할 때 성숙한 개인이 탄생할 수 있다. 세속적인 세상 개인의 가치과 존엄을 지키는 일은 성숙으로부터 파생되며 진정한 의미의 세상 물정으로 수렴된다. 나는 얼마나 세상 물정에 대해 해박한가? 에 대한 물음은 노명우의 <세상 물정의 사회학>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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