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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청소년 범죄, 어디까지가 그들의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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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주로 회사생활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나로서는 시간적 압박과 제약사항 속에 1권을 완독하기 위해서는 필사와 함께 하루 3시간씩 3일정도가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도서관에서 첫장을 넘기고 그 날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서 마지막 장을 넘겨버렸다. 그야말로 단숨에 해치워버렸다. 책이 주는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했을 때 어떠한 책이든 10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이러한 생각을 유지하기에 좀 힘들었다. 왜냐하면 하루만에 단숨에 읽어버리니 내가 지불한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격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재미가 없어 책값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너무 재미있어서 그것을 즐기는 시간이 짧았기에 아쉬운 마음이다. 사견이지만, 책이든 뭐든 어떠한 다른 형태의 놀이든지 재미가 크면 클수록 그것을 즐기는 시간은 짧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은 평범한 학교다. 담임 선생님은 그녀가 일하는 학교에서 그녀의 4살짜리 딸아이가 반 아이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 살인사건을 종업식 날 아이들 앞에서 연설하듯 고백하며 소설은 시작되는데, 그  고백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이 교실 안 공기를 옥죄어 든다.  딸 아이를 지키지 못한 부모의 마음과 학급 아이들을 옳바른 길로 지도해야 하는 의무 사이에서 딸아이를 잃어버린 선생님은 법과 질서, 윤리의식과 도덕관념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그리고 냉엄한 어조로 고백한다. 이 반에는 자기 딸을 죽인 범인들이 있다고. 그리고 그 범인들은 조용히 숨죽인다.

청소년 범죄, 어디까지가 그들의 잘못일까?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은 살인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이 옴니버스식 구성 속에 그들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인물들이 바라보는 살인사건은 제각각이며 그들의 시선속에는 전혀 다른 의미들이 생겨난다. 선생님의 고백을 통해 광기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면,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어른들의 거짓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어쩌면 순수하기까지 한 아이들이 광기에 휩싸여버린 잔인한 모습들은 무방비 상태로 세상의 거짓과 어른들의 이기심에 노출된 어리숙한 자아에서 발생한 미성숙함 일지도 모른다. 반면 미성숙한 자아에 의한 범행일지라도 그것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점이다. 미성숙한 자아는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아이들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러한 이유로 면죄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존속살인이나 집단성폭행같은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보수를 받고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뿐이다. 이따끔씩 미디어매체를 통해 그들이 사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 모습들이 노출되기도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최근에 있었던 어린 소녀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체가 든 봉투를 들고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가 어떻게 고장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아이들의 잘못이나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치부하기엔 그 문제가 가볍지만은 않다.

이처럼 쉽사리 단정할 수 없는 주제들이 이 소설안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그렇지만 결코 어렵지는 않다. 앞서 애기한 것처럼 이야기의 전개속도나 옴니버스식 구성, 그리고 자극적인 소재들은 흥미를 유발시키는 측면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저자 미나토 가나에는 2009년 데뷔작인 이 소설을 통해 각종 랭킹과 수상을 했음은 물론 영화까지 제작되어 흥행을 이어갔다고 하니 이미 검증은 끝난 것처럼 보인다.

비록 이 소설이 출간된지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소설의 내용과 주제가 케케묵은 옜날이야기가 아닌 오히려 지금의 현실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8년전의 소설이 소설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난 사실 실화야"라고 하는 것만 같다. 각박한 세상 두려움의 대상이 낯설음만이 대상이 되는 것은 이미 화석이 됐다. 낯설은 어른뿐만아니라 낯설은 청소년도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두려움의 영역이 위에서 아래로 낙수효과처럼 점차 나이가 어린 순수한 아이들에게까지 뻗친다. 

대체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서평이 채워지는 것 같아 고달픈면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것을 읽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네 모습을 본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려운 철학이나 인문학, 고전에서 한숨돌리고 싶다면 늦은 밤 적당한 스릴감을 유지한 채 이 소설을 읽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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