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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그가 죽임을 당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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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늘어놓은 변명 거리를 그의 제자 플라톤이 기록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크게 4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법정에 서서 재판관들에게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항변을 <변명>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감옥에 있을  그의 친구 크리톤과 감옥에서 나누는 대화 <크리톤>, 독배를 마시기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 <파이돈>,  마지막으로 늙은 꼰대들이 술을 마시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향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고대 시대의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숫자로 가늠해보면 자그마치 2,00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가 원형인지 사각형인지도 판명되지 않았던 시대다. 2,000 전의 사상과 생각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이 관심을 두기에는 이름부터도 혼란스럽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이름이 그러하다. 부끄럽게도 1년전 까지만 해도(독서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던 흑역사의 시절)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구분조차 못하였다. 그러한 삶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상상해 보면 굉장히 부끄럽다. 

소크라테스는 신탁(신의 말씀) 행하는 거리의 철학자로 그가 스스로 기록한 내용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그의 주변인물들에 의해 기록 되었다. 특히 플라톤 대표적이다. 거리에서 그는 끊임 없이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반문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한다. 이를 산파법이라고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본인이 가장 현명하다고 말할  있는 이유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며, 반대로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떠들기때문에 현명하지 않다고 한다. 법정에서도 감옥에서도 독배를 들기전에도 소크라테스는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논리를 펼치고 진리를 탐구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지를 깨닫게 한다. 그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는데, 신을 믿지 않는  조차도 신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의 태도에는 얄미운 구석이 제법 많다. 그가 죽은 이유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주변인들의 질투와 시기의 결과물이었다.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
모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자체에서만 아름다워 진다는 것은 다른사람에게   있는 가장 안전한 대답이다." 라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고 안전한 대답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위태롭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것도 보이지 않는 ,  진리와 참된 지혜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영화 박열에서도 "세상의 진실에 깊이 들어가는 자는 일찍 죽는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생존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삶이 행복할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불편하고 부정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세계" 우리는 '키치' 세계속에서 숨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마시기 직전까지도 평소의 언행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초연한 모습으로 독배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진리와 영혼의 당위성을 믿으며 실천한다.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한다. 어떠한 것을 안다고 이야기 할 때에는 그것에 대해 소크라테스처럼 이야기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5분정도는 그것에 대해 혼자 이야기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안다고 이야기할  없지 않을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추구하는 가성비 '' 시대에 고대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이러한 가성비가 더이상 유효한 단어인지 나에게 질문한다. 스마트폰 검색으로 빠르게 정답과 해법만을 찾고 안다고 떠벌리는 것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가성비 `갑`의 시대에 떳떳할 수 없는 이면이 숨어있다. 이러한 활동은 사유의 활동을 정지시켜 버리고 아는 것과 옳은 것이 마구 뒤섞여 헝클어져 버린다.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며 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는 . 소크라테스뿐만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도 누구나   있기에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책에 대해 감사한 마음은 아직 유효하다. 당연한 것 뒤에 숨겨진 당연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소크라테스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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