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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 "역대급 비교불가 자기계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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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심리학은 `트라우마`로 잘 알려진 프로이트의 이론을 완벽하게 뒤집는다.  현재의 내모습은 과거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현재를 연결짓는 `원인론`이 프로이트라면, 아들러의 심리학은 원인론을 철저히 부정한다. 현재의 내 모습은 결코 과거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위해 스스로가 만들어낸 모습으로 아들러는 이를 가리켜 `목적론`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현재의 내모습은 내가 목표했던 모습인 것이다. 가령 내가 백수인 이유는 어떠한 원인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원했던 모습이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원했던 것이다.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는 것이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어쨋든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해 과거의 원인은 아무것도 없다. 어렸을 적 학대를 받았던 기억도 왕따를 당했던 기억도 현재의 내모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것이든 가능하다.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그저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사는 것이다.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의 문제로 압축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란 재료가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아들러의 `용기의 심리학` 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들러는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타인에게 인정받기위해 행동하는 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잘했어`라는 칭찬 한마디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칭찬은 인간의 가치에 차등을 두기 때문이다. `잘했어`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가치있는 사람이 덜 가치있는 사람에게 내려주는 당근과 같다고 한다. 직장에서 가치있는 사람은 직급이 높은 사람이고, 가정에서는 부모가 된다. 결국 수직적인 관계는 비교를 낳게 되고, 이러한 비교는 열등감을 생성한다. 모든 개인은 저마다 다른 개별적인 존재지만, 일순간 하나의 기준을 토대로 모두를 획일화 시켜버린다. 결국 개인은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들러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하라고 한다. 이러한 수평적 관계 속에서는 `잘했어`가 아닌 `고맙다` 혹은  `감사하다`는 언어로 치환된다.즉 적이 아니라 친구로서의 수평적 관계다.

주체적으로 사회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은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다.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가정 또는 사회에서 수평적 관계를 통해 나의 옳음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선의 반댓말은 악이 아니라 `독선`이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타인을 내 소유로 여기는 잣대가 기저에 깔려있다. 소유적 태도는 타인을 내 아래로 인식하게 하며, 가치의 차등성을 생성시킨다. 소유적 태도는 충분히 폭력적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소유하는 자도 소유당하는 자도 자연스럽게 모두 수직적 사고 체계에 어떠한 의문점도 제시하지 못하고 적응해 버린다. 용기가 소멸되어 버린다.

타인에게 인정 받기 위한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인정따윈 아랑곳 하지 않을 것인가? 이것은 소멸된 용기를 부활시키는 행위이자 자유로운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들러식 삶은 당장 오늘 죽어도 후회따윈 없다고 한다. `지금, 여기` 매순간 나를 나로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죽어도 괜찮다면 이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 죽는 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면 아들러 심리학은 논리적이면서도 빈틈없는 처방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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