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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몸은 갇혀 있지만, 결코 정신은 갇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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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부끄럽지만 나에게 `교과서적 인물`이었다. `교과서적 인물` 이란 글자 그대로 교과서에서만 봤던 인물이란 뜻이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 지금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한 줄 평을 버무리자면, 다산 정약용을 10여 년 만에 만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로 10년 전 잊고 있었던 비법서를 이제야 꺼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의 아들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다. 그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당파싸움이 종교탄압으로 이어져 신유사옥이라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 사건으로 인해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유배지에서 두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슬픈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때로는 엄하게 훈계하고, 때로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걱정하고,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에  자식들이 학문 공부를 소홀히 할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유배지에서 편지로 숙제까지 할당해준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소름 끼치는 일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정약용의 따뜻한 마음은 시대를 가로질러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된다.

뿐만 아니라 실학자로서의 뛰어난 지성적 모습도 보여준다. 효제를 근본으로 한 유가의 사상들을 막힘없이 논하며, 유배지에서도 사회에 대한 감각을 유지한채 날 선 비판의 시선을 보내고, 삶의 참된 지혜를 그 만의 시선으로 쉽게 일깨워 준다. 몸은 갇혀있지만, 정신은 갇혀있지 않다. 

정약용은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모든 죄악은 비밀로 하려는 일에서 생겨나기 마련이다."처럼 어떠한 자세가 지혜로운 것인지 그 의미를 곱씹어 보자면 반성하지 않는 이 없을 것이다.

가령 사람들은 "이건 비밀인데 말이지..", "너만 알고 있어...", "어디가서 말하지 마...",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와 같은 뉘앙스로 숱하게 떠벌리고 다닌다. 정작 그러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으며 정작 그 내용에 자신은 없다. 이야기하는 본인도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결국 정보의 형평성을 완화시키는 `척`하는 대화는 `있어 보이는 척`하는 실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궁금한 척`하는 실제 아무 관심 없는 사람만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의미없는 이야기만 허공에 멤돈다.

또한 정약용은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린다. 삼키기도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라고 한다. 그 만큼 입이란 것은 생명을 유지시켜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 타인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편지를 쓸 때도 혹시나 편지가 유실되어 적대적인 사람이 줍는다 해도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내용만을 담아야 한다고 하니 과연 현명하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도 좌절하거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을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참다운 선비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비록 몸은 유배지에 갇혀 있을진 몰라도, 그의 마음과 정신은 한 차원 높은 것으로 가두어 둘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 반대로 요즘 몸은 자유롭지만 마음과 정신은 유배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유배되어 있는 마음과 정신에 편지를 보내는 일. 밖으로 나돌던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약용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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