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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화려한 싱글라이프의 자격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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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화장실은 개인의 생리적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완전한 개별적 느낌의 욕구 해소의 공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보단 함께가 좋았다. 절대로 혼자이고 싶지 않았던 학창 시절이 끝나고 대학생활은 가끔씩 혼자라서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하지 않는 점심메뉴나 원하지 않는 사람과 조별과제를 수행할 때도 차라리 혼자 먹거나 혼자 과제를 하는 쪽을 택했다. 그 편이 훨씬 나라는 개인에게 편안함과 완성된 느낌을 주었다. 생각건대 휘둘리는 것보단 개인의 충만함을 택했던 것 같다. 누군가 함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그리는 그림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혼자 있는 모습 자체는 자의든 타의든 별반 다르게 보이진 않지만 수동과 능동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상반됨을 나는 알고 있었다. 

 

화려한 1인가구의 현실

노명우 교수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출발선도 이러한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오늘 날 증가하는 1인 가구의 모습은 예능프로그램의 족보 없는 무지개가족이나 엄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운 건지 고운 건지 알 길 없는 오리새끼들의 화려한 싱글라이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뜻하지 않게 기러기가 된 가장의 모습이나 돌아온 싱글도, 힘없는 독거노인도 다수 포함된다. 화려하고 여유롭기만 한 싱글라이프가 아닌 서글프고 고독한 모습들도 1인 가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가족 집단의 시선에 의하면 1인 가구는 사회 악이다. 삶의 결실을 맺지 못한, 꽃 피우지 못한 사회의 부정적 파편들로 구성된 비극의 시나리오다. 혼기를 놓쳐버린 나이는 어딘가 치명적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돌싱은 참을성이 결핍돼버린 이타적이기보단 이기적인 인간상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매우 단단한 상식의 벽은 대부분 가족을 이룬 집단이 만든다. 그들 상식으로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도출해 내는 것이며 그것은 상상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단지, 1인 가구의 증가는 이타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가정 중심성이 약화되는 징후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실 저자인 노명우 교수도 독립한 1인 가구라고 고백한다. 그렇기 떄문에 1인 가구에 대한 선입견을 물리치고자 1인 가구를 대표해 항변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사실 책을 읽기 전 나의 기대가 그러했다.) 철저히 1인 가구와 4인 가구 사이에서 균형의 추를 놓치지 않는다.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비교하고 결론지어 조언하지 않는다.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처음의 키워드가 미혼, 비혼등 가족의 형태를 의미했다면 책을 쓰는 동안에는 독립, 자율, 권능, 홀로서기, 관계, 자기실현같은 단어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야기의 방향은 혼자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간 본위에 대한 물음으로 향한다."어느새 `혼자 사는 것`은 결혼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했건 상관없이 자신의 선택에 각자의 방식으로 책임을 지려는 시도를 표현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고 한다.

 

역할밀도 vs 자기밀도

중요한 것은 1인가구나 4인가구가 아니다. 어떠한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하며, 응원을 통해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밀도와 역할밀도의 적정한 균형 유지라고 한다. 자기밀도가 높은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집중한다. 때문에 내면과의 소통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생애에나 가능할 것 같았던 태도를 바꾼다. 또한 타인과 연대의 관계를 형성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의 진정한 의미는 전혀 다른 개별적 존재들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를 구성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반면 자기밀도가 낮고 역할밀도가 높은 사람은 타자와 착취의 관계를 형성한다. 얄팍한 의미로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그들은 독단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이타적인 척 한다. 독단적인 모습은 관계의 희생양을 만들고 자율적인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의지는 항상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다. 아버지로서의 의무, 남편으로서의 의무, 직장이나 학교의 선배후배로서의 의무처럼 다양한 의무감 앞에 시달리고 휘둘린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얄팍한 의미의 사회적 동물이 보여주는 유일한 행동패턴은 저녁이 되면 서로의 의무감을 자위하며 얼큰하게 한바탕 취하는 것이다. 역할밀도에 지배당하면 지배당할수록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기만하다. 취미생활이 전무한 역할밀도가 높은 사람은 내면의 깊이감을 느낄새도 없이 타인과의 경쟁에만 몰두한다. 취미생활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파생되는 능동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이상 1인가구나 4인가구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일반명사가 고유명사를 말살시키는 메커니즘에서 역겨움을 느낄 때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순간을 내면속에서 생각해 내는 것이다. 자기밀도와 역할밀도는 공존할 수 없는 대립의 관계라고 한다. 때문에 정신적 성숙함을 통해 적정한 균형감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앞서 읽은 저자의 또 다른 저서 <세상물정의 사회학>의 느낌처럼 노명우 교수의 이야기와 시선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많은 부분이 큰 공감을 일으키고 평소 몇날 몇일을 고민해도 언어화가 안되었던 느낌과 생각들을 말끔히 정리해준다. 필력 또한 상당한 내공이 느껴짐은 물론 내용의 깊이 또한 얕지않기 때문에 학문적 깊이와 그의 통찰력을 소화하기엔 다소 벅참을 느낀다. 모두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멋진 싱글라이프를 기대하며 얄팍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얄팍한 마음은 나만의 치타델레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상기시켜준다. 치타델레는 내면의 숲이나 성, 요새따위의 자기밀도를 높이는 공간이다. 언제까지 나만의 치타델레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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