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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을 응시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사형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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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심연을 응시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사형 체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포함한 회원들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연극을 꾸민다. 그들은 이미 사면해 놓은 상태였지만, 형식적인 사형 절차를 치른 뒤에 집행 유예 선고를 발표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형 집행과 관련된 세부 사항들은 모두 극비에 부쳐졌고 교수대의 규모, 죄수들이 입을 옷, 북 연주, 총살 장소 등 세부사항까지 황제가 몸소 관여했다.

1849년 2월 22일, 마침내 끔찍한 가짜 형 집행이 거행되었다. 죄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이 연극은 자칭 민중을 사랑한다는 조무래기 지성인들을 한번쯤 혼쭐 내주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한 후 풀어주어 그들에 대한 황제의 자비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극적인 사건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작가로서의 행보에 비옥한 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체험은 20년이 지난 뒤 소설 <백치>를 통해 예술 언어로 옮겨지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은 그가 방문했던 한 귀족의 집에서 리옹에서 목격한 단두대 사형 장면과 함께 사형 언도를 받았던 사람의 마지막 몇 분간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있다. 
그는 소설 1부 5장에서 이 순간의 정신적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이는 곧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의 문턱앞에서 경험했던 죽음에 대한 고백이다.

이 사나이는 다른 이들과 함께 교수대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사형 판결문이 낭독되었습죠. 그는 정치범으로 총살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0분 뒤 집행 유예가 선포되고, 다른 처벌이 내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판결 사이의 20분이나 15분쯤을, 그는 몇 분 뒤면 갑자기 죽게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흘려보냈습니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모든 것들을 기억했고, 그 몇 분 동안 일어났던 어떤 일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군인과 구경꾼들이 빙 둘러 서 있는 교수대에서 20보 가량 떨어진 거리에 수인들의 수에 맞춰 말뚝이 흙 속에 박혀 있었답니다. 처음 세 명이 말뚝으로 끌려가 묶이고, 수의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총을 보지 못하도록 수인들의 눈 위로 흰 가리개가 씌워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병사 몇 명으로 이뤄진 일개 대열이 각각의 말뚝을 바라보며 도열했습니다.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 준 사람은 여덟 번째 줄에 서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의 순서는 세 번째 그룹이었던 거죠. 사제 한 명이 십자가를 들고 그들 각각에게 다가갔습니다. 살아있을 시간은 5분도 남지 않았을 것 같더랍니다. 훗날 그는 그 5분이 끝없는 시간의 확장, 거대한 재산처럼 느껴졌답니다. 그는 이 5분 동안에 최후의 순간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실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 동안에 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다는 겁니다.

단두대


우선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의 시간을 쓰고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데 2분, 그리고 나머지 1분은 마지막으로 주위의 광경을 둘러보는 데 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일을 결정하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는데, 그는 그 일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스물일곱 살의 건강하고 튼튼한 청년이었습니다.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그중 한 사람에게 상당히 한가로운 질문을 하고는 그 대답에 흥미를 느끼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이윽고 동료들과의 작별인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기 위해 할당한 2분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미리부터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즉 자기는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살고 있다, 그러나 3분 후에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어떤 또 다른 인간,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그것은 뭘까? 이 문제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리고 명확하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다른 인간이 된다면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그리고 어디서?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2분 동안에 풀어버리려 했단 말입니다.
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금빛 지붕 꼭대기가 밝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더랍니다. 그는 무서우리만큼 집요하게 이 금빛 지붕과 지붕에 반사된 햇빛을 바라보면서 그 광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답니다. 마치 광선들이 그의 새로운 본성이고, 3분 후면 그는 어떻게든 그것들과 한 몸으로 용해될 것만 같았던 거죠.(중략)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런 생각이었답니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은 얼마나 무한한 것이 될까,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이 완전히 내 것이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1분의 1초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한 순간도 헛되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는 겁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사형 체험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무한한 시간의 확장

죽음 직전 남겨진 5분에 대한 작가의 단상은 인간 의식에 있어서 무한한 시간의 확장 가능성을 구현한다. 5분밖에 안되는 시간이지만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초인적인 삶의 감각을 느끼고 있으며, 이것이 그 어떤 보물보다도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사실 죽음의 문턱에 다가갔다가 삶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죽음 직전의 그 짧은 순간에 자기 인생의 중요한 나날들이 필름처럼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삶에 대한 회환과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의 영상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이후에 기적처럼 다가온 새 생명에 대한 인식은 그야말로 환희 자체였다고 말한다. 죽음의 통로를 빠져나온 임사체험을 했던 이들의 느낌을 도스토예프스키도 강렬하게 체험했을 것이다.

 

- 박영은 <도스토예프스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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