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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박영은의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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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는 보고 -p.3-

어린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로부터 따스한 정신적 피난처가 되었던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p.7-

아버지로 인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앙심 깊은 가정 출신이며 어릴 적부터 복음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점은 그를 정신적으로 성장시키는 텃밭이 되었다. -p.8-

작가의 기억 속에는 난봉꾼 아버지였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를 싫어했던 자신의 내면 역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할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해 마음을 열고, 그를 자기 가슴에 끌어안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으며, 그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작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p.12-

나중에 조사 위원회에 제출한 해명서를 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사실을 담담히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순진한 이상주의와 달리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독일에서 헤겔의 관념론에 의해 논박 당하였고, 결국 이는 유물론과 무신론을 낳은 배아가 되었다. 포이에르바흐와 마르크스를 추종하는 좌파 헤겔주의자들은 추상적인 형이상학과 단교하고 유물론적 사회주의의 토대를 닦게 되었다. 그리고 무신론적 유물론은 결구 기독교적 유토피아 사상을 짓밟으면서 자연스럽게 마르크스 공산주의 행보로 이어졌던 것이다. -p.16-

아이러니하게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시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한층 더 강인함을 얻었다. 1849년 판결을 기다리며 감옥에서 쓴 메모는 그의 정신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인간 내부에는 인내와 생명의 거대한 저수지가 있다. 사실 그것이 이토록 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난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낙담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나는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난 지금 내 안에 고갈되지 않는 생명력이 비축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p.22-

이 때문이었을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성서를 읽어나가며 그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된다. 시베리아 유형 전, 과격한 성향을 띤 사회주의자이자 공상적 혁명가, 무신론자였던 그가 변모한 것이다. -p.37-

더 나아가 설령 누가 자신에게 그리스도는 진리 밖에 있는 존재라고 증명해 보일지라도, 자신은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남는 쪽을 택하겠다고 단언하고 있다. 설령 그리스도가 진리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은 그의 놀라운 사상적 전환을 대변하는 것이다. -p.37-

그는 파리의 부르주아주의는 자기만족적인 마취 상태에 빠져 있으며, 그들의 부르주아 본성에는 노예근성이 베어 있다고까지 비판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런던 역시 부르주아적 기운이 악마적인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도시로 느껴졌다. 바알 신 같은 거대하고 화려한 런던이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라는 점, 그리고 이 도시에 세계 박람회의 화려한 성과와 빈민굴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식민 제국의 끝없는 물질과 권력 추구의 실상과 비극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세계박람회로 몰려든 무수한 사람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엄청난 자본주의 체제의 힘을 바알의 왕국이자 인간의 희생물이 바쳐지는 악마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수정궁 같은 도시와 세계 박람회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온 무수한 사람을 한 무리로 만들어버리는 소위 '사회주의적 수정궁'으로 변형되어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된다. -p.44-

그리고 얼마 후 작가는 프랑스로 출발했는데, 가는 도중에 비스바덴에서 나흘 동안 머물면서 룰렛 도박에 손을 대게 된다. 이후 계속된 도박에 대한 작가의 비극적 열정은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p.46-

그에게 수슬로바와 룰렛을 향한 두 가지 열정은 하나로 뒤엉켜 풀 수 없는 실타래와 같은 것이었다.
도박걸기의 흥분, 카지노의 분위기, 룰렛 테이블에 둘러서 있는 탐욕스러운 인파, 수북이 쌓인 금화, 물주가 외치는 소리, 심장 박동소리, 파멸의 불길한 전조와 일확천금을 얻을 것 같은 희망, 이 모든 것이 그의 시적 정신과 영혼을 사로잡았다. -p.47-

수슬로바가 왜 이렇게 행동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자신의 신념을 말살시킨 최초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받은 일종의 모욕감으로 그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잠재의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p.50-

도스토예프스키의 과시용 소비는 수입을 감당할 수 없었다. 호화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돈을 뿌려 댔다. 자린고비 아버지와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p.53-

간질이 현실 너머의 비가시적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가 인생에는 도움이 되는 요소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육체적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었고, 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아들에게까지 유전으로 이어졌던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p.67-

당시 인간이 개체화되고 분열되어 가는 시대를 개탄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과연 우리의 공동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다양한 경향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 일치를 이룰 수 있는 합일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몰두하게 된다. -p.72-

교회와 세상의 소통을 염원하게 된 작가가 알료사를 수도원에서 기도나 하는 존재로 머물게 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 실천하는 종교인으로 행동하도록 플롯을 잡은 것은 그 때문이다. -p.74-

도스토예프스키가 표도로프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확대시킨 것은 인류를 하나의 운명으로 엮어 있는 '거대한 가족'으로 보는 관점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p.78-

이와 같이 통합을 거부하는 인류를 상징하는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 속에 세계 비극의 궁극적 표현으로 아버지 살해라는 테마가 도입되는 것이다. -p.78-

"오만한 인간이여, 자기 자신을 낮추어라. 무엇보다도 먼저 자존심을 버려라." -p.8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그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참으로 사는' 신비를 그대로 드러냈다. -p.88-

극심한 가난과 죄의 심연, 미칠 듯한 도박의 흥분 상태와, 끓어오르는 욕망,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수치심, 사지가 뒤틀리는 간질의 고통, 사랑했던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때문에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받는 자, 정신질환을 앓는 자와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자, 격렬한 욕정과 욕망에 시달렸던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천재이기 이전에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었던 한 '작은 인간'이었기에, 우리는 그에게서 '큰 작가'의 모습을 잃어내는 것은 아닐까. -p.89-

- 박영은의 <도스토예프스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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