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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모멸감> "자기를 극복한 사람만이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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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엄음판처럼 살벌하고, 인정사정 없는 모멸이 가득찬 한국 사회다. 층간 소음으로 칼부림이 일어나고, 경적을 울렸다고 위험한 차도에서 골프채를 휘두른다. 여성에게 무시당한 트라우마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몸빵(?)하는 직업군에 속하는 종사자들에게 고객들의 욕설과 반말은 일상다반사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굴욕과 수치심이 개인의 마음을 황폐화 시킨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외침 앞에 성공한 인생이란 그저 부의 증가를 나타내는 뜻으로 풀이된다. 작금의 상황은 물질만능주의를 정당화하고 고착시키며, 물질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개인의 몸과 마음은 날카로워지기만 한다. 굴욕감, 억울함, 패배감, 수치심, 열등감 등의 감정들은 끔찍한 사건사고의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한다.

은행 강도의 속마음
차라리 독한 마음으로 책장까지 씹어먹으며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은 그나마 낫다. 그렇지만 저자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행위, 타인을 욕되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하는 행위는 살인충동을 느낄정도로 고약한 방법이다. 다른 사람을 깔보고 흉보는 언사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모습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내용은, 은행강도들이 돈때문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 그 순간만큼 상대방으로 하여금 존중어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내용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명쾌한 정리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인 것이다. "우리는 남들을 열등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 한다. 자기보다 못났다고 여겨지는 부류의 사람들과의 선 긋기를 통해 스스로의 잘남을 확인하려고 한다." 

자기를 극복한 사람만이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한반도 지형적 특성 상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겪으며 고도의 압축성장을 하였지만, 실상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모멸감 가득한 사회의 형성 원인 중 하나라고 말이다. 양반과 상놈으로 대표되는 신분제는 화석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재력, 사회적 위치, 외모, 아파트 브랜드, 자동차 메이커와 같은 기준으로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짓는다. 그리고 다수의 개인은 물질적 양반이 되기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도외시한다. 
톨스토이는 "자기를 극복한 사람만이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결국 모멸감 가득한 한국 사회는 자기를 극복하는 행위, 즉 자아성찰과 내면의 침잠 없이는 정서적 유토피아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배움을 통한 정신적, 문화적 성숙이 절실히 요구된다. 

"삶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라는 내용은, 이 책의 또 다른 커다란 주제와 맞물려 있다. 썸바디에서 노바디로 나아가는 순간, 정신적 단단함은 그 깊이와 무게를 더할 것이다. 책의 내용처럼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인 모습인 것이다.
저자 김찬호의 <모멸감>은 한국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희망한다.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상황들과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우리들의 부끄러운민낯과 마주치게 된다. 그 안에 뿌리깊게 박혀있던 우월의식과 타인을 깔보는 시선에는, 근본적 원인이 바로 우리의 파괴된 자아에서 소멸되어가는 자존감이란 사실이다. 개인의 가장 숭고한 영역인 감정의 영역은 삶을 지탱해주는 생명과도 같아서 그 어떤 누구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몇몇 주변사람들에게 고백했다. 그때는 내가 좀 미안했다고..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 Page. 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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