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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모두가 나비가 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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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목표를 향해 아무 생각 없이 높은 곳으로 오르고 또 오르는 애벌레들의 자아성찰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 반, 글자 반으로 짧게 구성된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어른도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들보단 어른들이 문제점투성이다. 나이가 들고 많은 것을 경험할수록 경험 위주의 사고방식은 주체성을 상실하기 좋은 밑거름이 된다. 남들한테 뒤처질까 두려워 옆 사람이 좋다고 하면 따라 하기 바쁘다. 깊은 사색과 뚜렷한 목표의식은 휘발되어 날아간지 오래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남들과 구별되는 개별성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 또는 조금은 특출난 특이한 사람으로 포장된다. 확실히 이런 측면에서는 아이들이 월등하다. 

돌아갈 수 없는 애벌레들의 선택

이 책의 주인공인 호랑애벌레와 노랑애벌레 역시 맹목적인 믿음을 따라간다. 다른 애벌레를 짓밟기도 하고 떨어져 죽는 애벌레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들의 여정 속에는 행복, 사랑, 죽음이 포함된다. 그들의 인생은 무엇인가? 왜 오르려고만 하는 것일까? 애벌레들은 끊임없이 자문한다. 이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삶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는 고집스러운 그들의 욕망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털투성이 고치속으로 들어가 나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고치속으로 내던져야 한다. 한번 고치속으로 들어가면 두 번 다시 애벌레로 돌아올 수 없다. 나비가 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선택해야 한다. 나비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고치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인지, 아니면 느리지만 안락한 모습으로 나뭇잎을 갈아먹으며 지금처럼 살아갈 것인지를..

어제의 나를 말살시키는 행위

애벌레가 나비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는 방법은 모두 엇비슷하다. 어떤 애벌레든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에 몸을 내던져야 한다. 반대로 특별한 순간을 외면하는 방법은 수만 수천 가지가 있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 있다."  그런 면에서 수준 높은 통찰력을 안겨준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치가 되어야 한다. 고치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죽음과 다름없다. 어제의 나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나의 생각, 나의 모습은 영원한 과거 속에 머문 채 그것과 완전한 이별을 고한다. 결국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말살시켜야 한다. 그것은 내 생각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겸손한 마음가짐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보장된다. 작지만 용기 있는 애벌레들은 그것을 해냈고, 결국 나비가 된다. 나비의 날개짓에는 무한한 자유를 품고 있다.

 

모두가 반드시 나비가 될 순 없다.


반드시 삶이 특별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애벌레들이 나비가 될 수 없고, 되지도 못한다.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면 된다. 단지 그 선택에 있어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무의미하다. 오로지 나 자신과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 단 두 가지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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