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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제대로된 부모는 아이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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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독일의 교육 환경은 높은 청소년 자살률을 기록한다. 가혹한 사회적 규범과 생산 방식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이러한 독일의 교육 현실과 저자 자신이 직접 겪었던 사회적 문제들을 이 소설 속에 담아냄으로써 자기 치료 효과와 더불어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학교의 역사로 짚어보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
교육기관으로 대표되는 학교의 역사는 영국과 프로이센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영국은 산업혁명 당시 공장에서 일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프로이센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한 군인 양성이 그 최초의 설립 목적과 맞닿아 있다. 두 나라의 공통분모는 올바른 인격 양성이나 건강한 가치관의 정립과는 괴리감이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명령과 규율로 동작하는 방식을 취한다. 헤르만 헤세가 처한 교육 환경 역시, 프로이센에서 시작된 최초의 학교와 그러한 동작 방식으로부터 강한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개개인의 학생들이 잘하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교육 방식이 아닌,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어떠한 가치관을 목적에 맞게 가장 효율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교육 방식인 것이다. 


주인공 한스는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학생이다. 한스가 사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한스만이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한스를 자랑스러워했으며 그들을 대표해서 무언가 이뤄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어린 시절 한스가 가장 좋아했던 낚시는 사치가 되었고, 공부에 대한 압박감 속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밤늦도록 학습에 매진한다.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자부심, 생각보다 공부가 그렇게 재미없지만은 않다는 자기 최면 속에 결국 한스는 차석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문제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발생한다. 한스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정과 배신, 친구의 죽음, 퇴학, 그리고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메말라버린 한스의 감정들은 영혼을 갉아먹히며 결국 그를 나락으로 이끈다.
한스와 주변 인물들은 사실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때로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때로는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우리가 흔히 겪고 보는 풍경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러한 평범함 속에 비극의 시나리오가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평범하다는 말속에는 그저 학습된 지식으로 주어진 대로만 살아갈 뿐, 서로 다른 모습들을 인정하고 교통하며 자족하지 못하는 수동성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 속 주인공 한스가 겪는 근본적인 문제는 외부에서 오는 가치와 내부에서 뻗어나가는 가치의 충돌이다. 한스가 심적 고통을 느낄 때마다 찾아오는 만성적 두통은 이러한 가치의 충돌을 잘 나타내준다. 
성장기의 청소년인 만큼 그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를 기원하면서 마지막 장까지 읽었지만, 한스는 끝내 수레바퀴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제대로된 부모는 아이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읽어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짊어진 책가방의 무게는 한스를 짓눌렀던 수레바퀴와 무엇이 다른가? 초등학교 때부터 무거운 책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도는 아이들의 모습은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지금의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부모 세대는 분명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랐던 세대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성찰하기에 앞서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의식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았던 세대들인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경험했던 환경, 알고 있던 교육적 지식은 더 이상 내 아이들이 처한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의식의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노력 없이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성숙한 배움의 자세가 요구된다.
남들이 하던 것을 따라 하며 성장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나에 대해 묻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보다 부모들에게 더욱더 절실하다. 무능한 부모는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을 아이들에게 돌려버리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는 아이들의 습관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은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으로 불리는 것은 오해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100여 년 전 독일 사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 중 하나는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풍요로우며, 그들이 낳은 자식들 또한 행복을 꿈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것과 마주할 것이다.

 


한스는 대답 대신 교장 선생님이 내민 손을 잡았다. 교장 선생님은 엄숙하면서도 친근한 눈길로 한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야지, 기운이 빠져서는 안 돼. 그렇게 되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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