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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의 <어쩌다 한국인> "칭찬보다 훈계에 익숙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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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됐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던 문제들이다. 그 속에서 나의 위치와 상황을 더듬어 본다. 분명한 점은 무언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 사회와 차별되는 타국의 모습들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 보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하기란 쉽지 않다. 선진국들이 가진 기술과 문화들이 부럽기만 하다. 헬조선이 싫으면 이민 가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허태균의 <어쩌다 한국인>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으로부터 왔는지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한국인들의 민망한 낯짝을 그대로 드러낸 책이다. 어쩌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이 아니다. 헬조선, 흙수저를 만드는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심리학적으로 풀어냈다. 심리학을 몰라도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나 역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칭찬보다 훈계에 익숙한 대한민국


저자의 질문 "누가 헬조선을 만들고 있나?"의 물음에는 그것은 5,000만 국민 모두라고 답한다. 조금은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꼭 틀린 말도 아니다. 헬조선, 흙수저가 번창하는 한국 사회에서 고통의 몸부림을 치지만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내가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일부분 진실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반성과 함께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은 불편하다. 항상 반성으로부터 출발하는 문화 역시 한국 사회의 특성인 것만 같다. 언젠가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님께 편지 쓰기를 하면 외국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추억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는 편지로 채우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스스로를 불효자로 자처하며 부모에게 죄송하다는 반성문을 쓴다고. 
칭찬, 격려, 감사보다는 처벌, 훈계, 반성이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한다. 교육에서부터 사회 전반적인 곳곳에 이러한 문화적 특질이 존재한다. 성숙한 문화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겹도록 이어져온 악습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허태균의 <어쩌다 한국인>은 악습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연결 지점을 안내해 준다.

 

포기를 모르는 한국인의 민망한 모순


저자가 한국인의 특성으로 뽑은 것 중에 흥미로운 것은 `복합 유연성`이다. 한쪽을 선택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쪽은 포기해야 하지만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둘 다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라는 말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끊기 없고 노력하지 않는 못난 사람으로 여겨진다. 즉, 한국 사회에서 포기는 죄악인 셈이다. 포기할 줄 모르는 특성은 모순적인 상황들을 연출한다. 싼 것을 찾지만 좋은 걸 내놓으라는 발언이나 비용은 줄이지만 안전은 더욱 신경 쓴다는 말들은 모순을 넘어 정신착란증에 가깝게 느껴진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싫어하고 포기할 줄 모르는 한국인의 특성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자명한 논리조차 거부한다. "선택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의 과정에서 가지는 것에만 목숨을 건다 그러니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아마도 역사적으로 궁핍과 가난의 길을 걸어온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아직은 어떤 것에 대해 포기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악착같이 포기하지 않고 더 가지려고 노력한다. 더욱이 고도의 압축성장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성숙 과정 없이 단기간에 쌓아 올려진 거대한 탑, 대한민국

그밖에도 주체성이 부족한 한국 사회의 숨겨진 이면과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하는 가족 확장성 사고방식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관계주의와 심정 중심주의까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모습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격한 공감을 일으킬만한 소재들이 많다. 책에 소개된 한 가지 예는, "내가 한턱 쏜다."라는 말속에는 그날의 주인공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한국인의 숨은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자유로움에도 자유롭지 못한 시대의 자화상이자 물질주의로 승부를 보려는 모습이다.
반면 심리학 용어들이 조금은 어렵게 포진되어 있어 가끔은 집중력이 떨어진다. 책 보단 차라리 '어쩌다 어른'이라는 동영상 강의가 훨씬 좋다는 독서클럽 멤버의 의견도 있어 참고할 만하다.



원래 고등의 지적 능력을 가진 인간은 존재하는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여,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징적인 것들을 추구하게끔 되어 있다고 한다. <어쩌다 한국인>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저자의 노고로 보아도 무방하다. 어떠한 것이 있기 위해서는 그전에는 반드시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없는` 시간은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5,000만 국민이 헬조선의 만들었다면 헬조선을 탈출하는 것 역시 5,000만 국민의 몫일 것이다.


사고의 구성 수준이 추상적인 사람은 관념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즐겨하고 장기적 행동 전략을 선호한다. 반면에 구성 수준이 구체적인 사람은 세부적이고 섬세한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특성을 보이지만 동시에 매우 단기적인 전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Page. 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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