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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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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혼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밥 먹었어?" 혹은 "잘 지내고 있어?"라는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정신없는 일상을 온전히 감내해야 만 하는 현대인의 생활패턴은 이렇게 주고받는 인사의 밀도를 철저히 파괴시킨다.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도 상대방의 가슴에 도달하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기 일쑤이다. 나를 걱정해주는 작은 감사의 마음도 느낄 틈이 없다. 누군가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은 상투적인 인사를 치르고 난 후에 그나마 실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에게 "밥 먹었어?"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 왔을 때, 작은 보답의 의미로 "밥 먹었냐고 물어봐 줘서 고마워"라는 대답은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준다. 
우아한 거짓말이란, 아마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무미건조한 인사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아한 거짓말로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어쩌면 `감사함`이란 마음의 열쇠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첫 장면은 한 소녀의 자살로 시작된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친구 관계로 인한 자살이라는 것뿐이다. 그것은 왕따에 관해서다. 은근한 선입견으로 선동된 친구들은 한 소녀를 정신적으로 압박하며 궁지로 몰아넣는다. 읽는 내내 분노가 솟구친다. 직접적인 선동자뿐만 아니라 방관자, 그리고 가족까지. 분노의 대상은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에게로 뻗친다. 아직 꽃피우지도 못한 나이에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소녀의 심정은 과연 짐작이라도 가능한가? 타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 따윈 없는 것일까? 그것이 애초에 가능하기나 할까? 조금씩 소녀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어긋난 부분이 바로잡히며 소설은 활력을 유지한다.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의 경계


영향력.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친구가 얻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느끼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기 사랑과 자기혐오의 경계선에서 자기혐오에게 권력을 내준 친구는 잔인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잔인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누구에게 영향을 받는지 따져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자기 사랑과 자기혐오의 경계선에서 건강한 영향력은 자기 사랑이 충만한 상태에서 사방으로 분사된다. 소설의 마지막은 독자들에게 한 소녀의 비극적 결말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살할 용기 있으면 악착같이 살지, 왜 바보같이 자살을 해?" 세상에 이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다. 더욱이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에게 바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두려운 순간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자살이란 선택지를 생각한다. 세상은 나의 인식 속에 존재한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은 나의 세계가 아니다. 내가 아주 약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타인의 결정을 판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고 위로하지만, 힘든 사람은 현재 누구보다 힘을 내고 있다. 한 숟가락 더 얹어봤자 힘든 사람이 힘을 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 세상에 10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은 단 한가지 세계가 아니라 100억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의 세계는 오직 단 하나의 세계이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처절한 고통의 순간 앞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나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100억 개의 세계 중 단지 한 가지의 세계일 뿐이라는 진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야 한다. 우아한 거짓말로 무미건조한 인사와 진실을 파헤칠 `감사`라는 열쇠가 필요하다. 같은 맥락으로 저자 김려령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생을 먼저 내려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세상이 반드시 화려한 것만은 아니지만, 소소한 기쁨들을 가득 품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가슴 깊숙이 메아리친다.

 

영화로도 개봉했다고 하니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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