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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지식과 지혜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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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부터 뉴턴, 아인슈타인 그리고 첼리스트 장한나 등 까지 인문고전과 철학고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의 긴 시간을 책을 읽고 생각하는 활동으로 채운 인물들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저자는 인문고전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하며 숱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현세까지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는 인문고전을 얼마만큼 파고들었냐에 따라 나뉜다고도 볼 수 있다. 공자의 `논어`만 1,000번 읽은 코오롱의 부회장 민경조에서 이병철, 정주영까지 경영 CEO들은 인문학 비용을 위해  수강료로 1,000만원도 지출한다고 애기한다. 이러한 수치적 의미는 그만한 가치에 대한 반증이자 중요성의 깨우침이며, 이미 누군가는 그 점에 대해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고전은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1~2,000년까지 시간의 역사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이고, 이러한 영구성은 가치를 증명한다. 앞서 소개한 인물들은 인문고전에 대한 자세가 누구보다 진지했으며, 이러한 자세를 통해 인문고전과 함께 역사의 한 부분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투자 책을 읽지만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누구나 부의 권력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지소로스, 잭 윌치, 워렌버핏처럼 유명 투자자의 책도 읽고 투자기법도 따라하지만, 결국 대다수가 실패한다. 그 이유는 인문고전을 통한 본질을 보는 시선의 높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첼리스트 장한나는 대학전공을 음대가 아닌 멘토의 조언으로 하버드 철학과로 진학했다. 촉망받는 첼리스트에서 철학과 진학은 언뜻보기엔 이해하기 어렵다.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철학 한다는 것은 니체나 데카르트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행위, 그 자체이다." 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단순히 첼로를 잘 연주하는 연주가로 머물기보다 더 높은 차원의 시선을 갖기 위한 철학가로서의 예술을 구현해 내기위해 철학과로 진학했던 것이다.

어떠한 분야든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잘 다루는 것을 뛰어넘어 전체를 구상하고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창조의 영역, 즉 예술의 영역으로 반드시 `철학`을 통한 고차원적인 인문학적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나의 생각과 책을 읽은 후 나의 생각을 변화 시켜주는 책은 멋있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역시 나에겐 상당히 멋있는 책이다. 책을 읽기 전 까지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이라든지, 플라톤의 이데아 등 단순히 `지식 차원으로서 알고는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내 생각이 부끄러웠다. 나의 인문학적 시선은 딱 그만큼 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나의 생각은 바뀌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지식 차원의 것이 아닌, 지식의 차원을 넘어 지혜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었다는 깨닮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 도타라는 게임을 근 12년가까이 즐기고 있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언급하고 싶은 점은, 어떤 한가지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다른 게임도 잘한다. 분명 전혀 다른 종류의 게임, 다른 제작사, 다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고만고만한 친구들보다 뛰어나다. 가령 스타크래프트를 잘하는 친구는 다른 게임 역시 잘하고, 그는 `게임 잘하는 센스있는 친구`로 통하게 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항상 주위에 게임 잘하는 친구 한두명은 꼭 있게 마련이다. 혹시나 같이 모여서 게임할때 이런 친구와 같은 편이 되면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고, 다른 편이 되면 부담감이 생기면서 게임의 흥미가 떨어진다.

 왜 게임을 잘하는 친구들은 다른 게임도 잘하는 것일까? 그것은 게임 하나하나를 개별적 지식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지식 차원을 뛰어넘어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지혜의 영역에서 플레이하기 때문이다.

 무슨 게임 하나 하는데 지식이냐 지혜냐 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보면 알 수 있다.그는 미술뿐아니라 철학, 역사, 식물, 건축, 물리학 등에서도 천재적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도 그랬고 플라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한 분야 뿐만아니라 2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겼다.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은 지식 차원의 것이고, 아우르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미술은 총싸움이고, 철학은 전략시뮬레이션이고, 물리학은 비행기 게임일 뿐이었다. 게임 잘하는 친구와 다를 바 없다.이는 프랙탈 구조로도 설명이 가능한데, 다빈치는 프랙탈구조 전체모습 중 큰 구조 속에 속한다면, 게임 잘하는 친구는 그 보다 작은 구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지식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지혜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삶. 지금껏 세계를 지배해온 0.1%의 힘. 현재와 역사 속 과거의 세계는 분명히 다르지만 역설적이게도 분명 같은 것이 존재하며 그것을 파악하는 능력.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시대를 가로지는 시선과 지혜를 갖추는 일이다.

 "읽고 필사하고 사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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