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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엄마가 죽으면 왜 슬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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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하기에 읽지 않은 사람도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버리게 만드는 고전소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자동차사고로 인해 40대의 나이에 운명을 달리했던 1913년 태생 프랑스 작가로, 박웅현작가의 스테디셀러 `책은 도끼다`에도 지중해문학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소개되어 궁금증이 증폭됐던 책이다.

주인공 뫼르소가 보여주는 사고방식에 대해 많은 질문과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말을 거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심지어 재판으로 인해 목숨이 없어질지언정 거짓을 이야기하거나 느끼는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히 진실만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이방인이 아니라 세상에 갓태어난 아이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엄마가 죽어도 슬프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엄마는 죽어서 없기 때문이다.

사회는 뫼르소에게 엄마가 죽으면 자식된 도리로 슬퍼함은 물론이요 울음을 터트려야 한다고 강요한다. 하지만 뫼르소는 슬프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 오히려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에 집에 가고 싶다고 느낀다. 그는 천하의 불효자식인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히 실존주의적 자세로 삶을 대하고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에 충실한 태도로, 뫼르소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가 죽기전이나 죽은 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즉 그는 불효자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과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철저하게 진실을 말하는 뫼르소와 달리 우리는 매 순간순간 자신과 타인을 속이며 거짓으로 살아간다. 피곤하지만 피곤하지 않다고 하며, 싫지만 좋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속이고 타인을 속이며, 심지어 거짓을 진실인마냥 의도적으로 믿어버리기까지 한다. 나의 존재를 보편적 가치속에 포함시켜 자아의 일부로 내재화 시킨다. 거기서 안도감과 위안을 얻는다. 결국 나란 존재는 나의 몸과 마음 안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밖으로부터 형성된다. 밖으로부터 형성된 자아는 주인공 뫼르소처럼 순간의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기에는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순간을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려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느낌을 충실하게 들여다 봐야하는데 나의 시선이 밖으로만 향하고 있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상은 내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안과 밖의 거리차이는 점점 멀어진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이러한 측면에서 비추어 봤을 때 독자로 하여금 순간의 행복과 사회의 보편적 가치 사이의 연결성을 실존주의적 자세를 통해 보여준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즉 실존주의는 모든 인간은 어떤것에 대해서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죽기 직전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 주인공 뫼르소는 인생의 참된 주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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