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우파니샤드

728x90

명료한 의식으로 당신을 깨닫게 하소서.

 

우파니샤드의 뜻과 베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우파니샤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자신의 철학 체계를 구성하는 데 <우파니샤드>를 모델로 삼기에 이르렀다. 그는 <우파니샤드>를 읽고 난 다음의 감동을 이렇게 말했다.
"<우파니샤드>는 이 세상의 모든 책 가운데 가장 가치 있고 숭고한 책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나의 임종 자리에서도 위안이 될 것이다."
전체 <우파니샤드>의 근본정신은 예수가 말한 "나와 아버지느 하나"라는 표현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내면에 있다"는 표현과 통한다. 물론 시대적으로 <우파니샤드>가 예수보다 앞선다.

산스크리트어로
'우파"는 '가까이',
'니'는 '아래로' 또는 '완전히',
'샤드'는 '앉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파니샤드(Upanishad)'의 글자대로의 뜻은 '가까이 아래에 앉는다'는 뜻이다. 곧 '스승의 발밑에 앉아서 전수받은 가르침'을 가리킨다. 이런 말뜻으로도 알 수 있듯이, <우파니샤드>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다. 스승에게 헌신하여 제자가 된 사람만이 스승에게 개인적으로 전수받을 수 있는 심오한 가르침이다.

<우파니샤드>는 원래 독립된 책이 아니라 방대한 문헌인 <베다>의 일부분이다. <베다>는 크게 네 종류 곧<리그 베다>, <사마 베다>, <야쥬르 베다>, <아타르바 베다>가 있다. 이들 네 종류의 <베다>가 주제별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된 내용의 성격에 따라 그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리그 베다> : 시로 쓴 깨달음
<사마 베다> : 노래로 된 깨달음
<야쥬르 베다> : 공양의식의 주문에 관한 지식
<아타르바 베다> : 진언에 관한 지식

이들 네 <베다>는 또 각각 성격이 다른 네 부분, 곧 <상히타>, <브라흐마나>, <아라냐카>, <우파니샤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우파니샤드>는 <상히타>, <브라흐마나>, <아라냐카>에 나오는 모든 찬가와 만트라 그리고 제례 행위의 철학적인 근거를 확립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부분이다. 베다전통의 마지막이라는 뜻에서 흔히 '베단타'라고 부르는데, 이때 '마지막'은 단순히 순서상 끝이라기보다는 <베다>의 정수 또는 <베다>의 결정체라는 뜻이다.
<상히타>, <브라흐마나>에는 상대적으로 제례 행위가 강조되어 있는 반면에 <아라냐카>와 <우파니샤드>에는 초월적인 지혜가 강조되어 있다. 그래서 <상히타>, <브라흐마나>를 '행위편' <아라냐카>, <우파니샤드>를 '지혜편'이라고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별다른 설명 없이 <베다>라고 할 때는 <상히타>, <브라흐마나>를 합친 행위편을 가리키고, <우파니샤드>는 <아라냐카와>와 <우파니샤드>를 합친 지혜편을 가리킨다. 

학자들은 <우파니샤드>의 저작 연대를 B.C 8세기에서 B.C. 3세기까지로 잡고 있지만, 누가 언제 어떤 <우파니샤드>를 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궁극적인 진리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우파니샤드>를 누가, 언제 썼느냐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우파니샤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존하는 <우파니샤드>만도 108개에 달한다. 그밖에 없어진 것까지 합친다면 몇 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우파니샤드의 핵심

<우파니샤드> 현자들은 <베다>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자적인 권위를 지닌 모습으로 등장한다. <베다>의 신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베다>에서처럼 신비한 존재로 나오지는 않는다.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신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형상화하는 지고한 존재 브라만의 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브라만은 만물 속에 깃들어 있으면서 동시에 만물을 초월한 존재이다. 지고한 신성인 브라만에 대한 이 개념이 <우파니샤드>의 핵심이다.'브라만'이라는 용어가 <베다>에서는'브라만'이 주로 사제인 브라만이 읊는 기도나 주문을 가리키며,좀 더 발전해서 성스러운 말씀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우파니샤드>는 내면화의 길로 들어선 인간 정신이 피워낸 꽃이다.베다시대에는 외적인 자연현상을 숭배했다. 하지만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은 명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하나이고,자연현상은 인간의 내면 의식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면을 탐구하는 명상 전통은 아리아인이 인도 대륙으로 이주하기 이전에 이미 인더스 강유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파니샤드의 궁극적 실재

<우파니샤드>는 종교의 의미에 관해 <베다>와는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제례의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궁극적인 실재가 있다. 우리는 오관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은 궁극적인 실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하나의 궁극적인 실재가 모든 존재의 핵이며, 우리의 참 자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그 힘과 하나이다.
궁극적인 실재와 '하나임'을 체험하는 데에는 사제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 제사나 그 어떤 종교적인 의식도 필요하지 않다. 명상을 통해 자신이 직접 '하나임'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 궁극적인 실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태어난 목적이며, 인간 정신은 이 목적을 향해 진화해 나가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는 이런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모든 종교적인 신앙의 원천이 되는 '영원한 철학'이라고 불렀다.

 

- 정창영 편역 <우파니샤드> 중 -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