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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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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으로 놀리는 게 웃겨?"



흑인 분장은 개그가 될 수 있을까?

 

한 개그맨이 TV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흑인 분장으로 웃음을 유도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피부를 검게 칠하고 입술을 크게 그리고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는 머리에 파를 붙이고 등장해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다. 이 장면이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흑인 비하'라고 비판했고, 제작진은 공식 사과하며 영상을 삭제했다. 이 장면을 연출한 개그맨도 자신의 "사려깊지 못했던 개그"에 대해 사과를 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더욱 크게 불거진 것은, 이 사건을 놓고 방송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설전 때문이었다. 방송인 A씨는 "인종을 놀리는 게 웃겨?"라며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 비판을 했다. 이에 방송인 B씨는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 비하로 몰아가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응수했다. 이어지는 방송인 B씨의 응답을 보자.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 비하로 몰아가는 형의 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어떻게 해석이 되냐면 영구, 맹구라는 캐릭터는 자폐아들에 대한 비하로 해석될 수 있고, 예전에 한국에 시커먼스라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개그란 것도 있었어. 그럼 그것도 흑인 비하인 건가?"

​이 글을 통해 영구, 맹구, 시커먼스라는 오래된 개그 소재들이 소환되면서 사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들이 개그와 비하 사이를 오가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중요한 질문이었다. 아직까지도 종종 화자되는 영구, 맹구라는 소위 '바보' 캐릭터는 장애인에 대한 비하일까? 1980년대에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 춤과 음악을 공연하던 시커먼스는 흑인 비하일까? 시커먼스는 당시 KBS의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인 '쇼비디오자키'의 인기 코너였고, 그 인기로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오늘날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그런 개그가 "웃기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린 시절에 영구, 맹구, 시커먼스 연기를 보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학교에는 그 연기를 너무나 잘 흉내내어 인기몰이를 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그런 개그가 웃기지 않다. 그렇다고 이어 대한 불편함을 표시하기도 쉽지 않다. 잘못하면 그냥 웃고 넘길 일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확대해석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흑인 분장의 논란은 "도대체 왜 웃긴가"라는 상당히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웃음을 차별로 연결시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며 '확대해석'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웃자고 한 말을 우리는 가볍게 웃어 넘겨야 할까? 아니면 정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까?

... 중략

잔혹성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엄청난 간극에서 온다고 했다. 고든 호드슨과 동료들이 연구에서 밝히듯,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유머, 장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를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놀려도 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반복된다. 우리가 누구를 밟고 웃고 있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는 이유이다.

 

-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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