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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 "노망난 에세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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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망난 에세이 집이라는 다소 공격적인 부재를 달았지만, 솟구치는 짜증은 어찌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무가치함을 담고 있는 에세이 집이다. 적어도 작가가 선택한 <남자들에게>란 제목은 자칫 독자들에게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심각한 오류로 보인다. `남자`라는 단어를 선택했으면 그 선택에 걸맞은 책임 있는 내용으로 텍스트를 채워야 함이 옳다. 생물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남자라는 생물일 터인데, 좀 더 보편타당하고 논리적인 통찰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저자는 매니악한 모습으로 시종일관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만 신나게 떠들어댄다. 

읽을 가치가 없는 대단히 편협한 책
과거의 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영국에 관한 고집스러운 집요함은 일본의 장인정신이 언뜻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독특한 취향에 빠진 고상한 취미에 불가하다. 메디치가의 문양이 새겨진 천으로 집안 가구를 꾸미고 마키아벨리가 앉았던 의자를 모조하기도 하고 멸망한 이름 모를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은으로 된 식기에 열광한다. 이러한 취향으로 판단컨대, 저자가 이야기하는 남자들의 모습 또한 영락없는 거짓이다. 논리도 없지만, 감정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편견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스스로 익사하는 꼴이다.
더 이상 은으로 된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양인들이 기개를 잃어버렸다거나, 일본 남자들의 목덜미는 왜 그렇게 얇은지 푸념하는 모습이나, 남자가 마흔이 되면 이후의 행불행을 알 수 있다는 좁아터진 식견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봐도 이해가 될만한 수준이 아니다. 저자의 글을 읽노라면 "도대체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스타일 있는 남자의 기준을 보면 철저하게 저자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스타일 있는 남자가 되기 위한 전술을 보면, 자기 나이를 잊지 말고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자연스럽지만 한 곳에 포인트를 두고, 사랑을 하고, 상냥하고,  청결하고 등과 같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야기한다. 누구나 공감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것이 저자의 매니악한 취향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점이다. "남녀 관계에서 `유종의 미`를 귀중히 여긴다면, 서로가 깨끗이 헤어지는 것보다 어느 쪽이든 한쪽이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장면에서 흘리는 남자의 눈물은 남자의 눈물 가운데 용서될 만한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유종의 미의 모습과 용서될 만한 유일한 남자의 눈물은 또 뭐란 말인가? 설득력 없는 텍스트는 작가로서의 책임감에 의구심이 든다.


읽는 내내 집중력이 계속 공격받는다. 번역이 이상한 건지 아니면 작가의 필력이 엉성한 건지 문장과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맥이 고통스럽다. 마치 저자의 고집스러움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하다. 자기 자신에게 흠뻑 빠져있는 모습은 유아독존이다. 읽는 시간이 아깝지만, 우습게도 시간이 천천히 가니 오히려 시간을 버는 느낌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여성 독자들은 이 책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점이다. 도발적인 책 제목 치고는 한참 수준 미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망난 에세이 집을 보고 다른 여성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갑작스러운 궁금증이 생긴다. 

노망이란 늙어서 망령이 든 것이라고 한다. 망령이 옮겨붙기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처분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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