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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시는 멈추는 순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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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시대의 작자 미상의 시부터 현대시대의 시까지 류시화 시인이 엮어 놓은 시공을 초월한 시집이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주옥같은 시들이 텍스트를 가득 채운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다. 여행자의 입장으로 삶을 대하는 류시화 시인의 시선은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소개된 시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이 깊은 울림이 있다. 좋은 시들을 펼쳐놓고 어떤 시를 소개해야 할지 고심하는 류시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 역시 좋은 시들 중에 무엇을 소개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 파리 지하철 공사 공모전 1등 당선작

<눈물>
만일 내가 무엇인가로 돌아온다면
눈물로 돌아오리라.
너의 가슴에서 잉태되고
너의 눈에서 태어나
너의 뺨에서 살고
너의 입술에서 죽고 싶다.
눈물처럼.

작자 미상

멈춤의 순간, 시는 존재한다.
시는 익숙하지 않다.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반적인 글쓰기는 논리적인 글들이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고, 그것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는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이 합쳐지고 때로는 분해된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는 언제나 처음과 마주하는 순간 그 자체이다. 같은 시를 백 번을 보면 백 가지의 시가 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는 멈춤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멈추는 순간에 시의 아름다움,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빼곡히 적힌 스케줄표를 따라 움직이는 소란스러운 삶 속에서 우리는 멈추는 법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것과 동시에 여유를 잃어버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묻지 않게 되었다. 류시화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시는 인간 영혼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다. 그 영혼의 목소리는 속삭이고, 노래한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을 멈추고 듣는 것'이 곧 시다. 시는 인간 영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우리는 언제나 바람직한 것, 옳은 것, 원래 그런 것 따위에 익숙하다. 보편적인 이야기들은 사방에서 들려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풀리지 않는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 한편에 묻힌 채로 깊이 잠들어 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 가슴에 깊이 묻힌 그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이 책의 제일 앞장에 실려있는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초대>란 시는, 그런 의미에서 외우고 싶을 정도로 나를 자극한다. 

시집에 대한 서평은 무의미하다. 나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다만 좋은 시를 소개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느낌을 함께 공유한다면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일 것이다.

 



<초대>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 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삶으로부터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 많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적이 있는가 알고 싶다.

나의 것이든 당신 자신의 것이든
당신이 기쁨과 함께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미친 듯이 춤출 수 있고, 그 환희로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까지 채울 수 있는가
당신 자신이나 나에게 조심하라고, 현실적이 되라고,
인간의 품위를 잃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 않고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진실할 수 있는가
배신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견디더라도
자신의 영혼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것이 예쁘지 않더라도 당신이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새운 뒤
지치고 뼛속까지 멍든 밤이 지난 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나와 함께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고독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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