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난 채사장이 좋다"

728x90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

채사장의 밀리언 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였다면,<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는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이야기를 관계라는 주제를 통해 성찰해 나간다. 관계에 대한 폭넓은 철학적 이야기들로 세계를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선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차분하면서도 고요함이 묻어난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단정함을 잃지 않고 내면의 세계를 방황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다. 1. 타인, 2. 세계, 3. 도구, 4. 의미의 네 가지 큰 주제는 또다시 통증, 언어, 죽음, 의식,티벳,영원 등의 이야기로 수렴한다. 그래서 나는 채사장이 좋다.

 


나와 타인의 관계. 그것은 완벽한 외재성이다.


아마도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이라는 존재는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는 것’처럼 두렵고 공포스러운 체험 일지 모른다. 그것은 불규칙적이며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동일한 역사와 문화, 같은 언어를 공유할지라도 타인의 거친 파도를 피해 갈 수 없다. 채사장 역시 타인과의 관계는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고백한다. 매번 자신의 세계가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좌절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물리적인 외부 영역에 실존하는 타인은 그것 자체만으로 결코 닿을 수 없는 부정성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이러한 외재성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채사장은 흥미롭게도 삶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입장으로 무거운 세계 속에서 관계의 고단함을 지혜롭게 풀어낸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 유물 속에서 그만의 시선으로 발견한 사색의 결과물이다. 2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 속에는 현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재산을 정리한 내역이 있고, 일상생활을 메모한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이집트에서 30년 정도 머무를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저 일상적인 생활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경험하고 관계 맺고 추억을 만들 것인가? 채사장은 질문한다. 지금의 삶도 여행자의 안경을 쓰고 한번 밀고 나아가 보자는 것이다. 이 삶의 여행자로써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당신 앞에 세상은 하나의 좁은 길이 아니라 들판처럼 열려 있고,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이제 여행자의 눈으로 그것들을 볼 시간이다.”

채사장표 사자의 서?
채사장을 읽노라면 자꾸 <티벳 사자의 서>가 떠오른다. 특히 4번째 장 `의미`는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은 채사장표 <사자의 서>인 것 같기도 하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수면 아래로 흐르는 거대한 덩어리는 <티벳 사자의 서>의 내용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때문에 <티벳 사자의 서>를 함께 읽는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바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겠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일원성과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제한된 의식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윤회하며 관계하는 그 어떤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색은 고대 인도 철학 우파니샤드의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경계까지 맞닿아 있다. 결국 이 책의 제목<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의 의미를 명료히 깨닫게 된다."내가 너의 본질인 아트만이고, 동시에 우주의 본질인 브라흐만이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제 우리가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영원한 존재임을 안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바로 그것임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너와 나는 다른 세계의 존재자인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내가 너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작가, 채사장

감성적인 수필들로 가득한 이 책의 시선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뻗어나간다. 때문에 보편과 다수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친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의 책이 늘 그렇듯이 읽는 것에 어려움은 없겠다. 뻥 뚫린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다만 많은 이야기들이 감정이라는 포장지로 싸여있을 뿐이고, 독자는 그것을 벗겨내기만 하면 된다. 벗겨내지 못한 채 포장지의 아름다움만을 음미하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반면 종교와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사이다 같은 텍스트는 청량감이 빛을 발한다. 한치의 치우침 없이 호소력 있는 문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무척이나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간결하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고수일수록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탁월함이 있다. 반면 하수는 쉬운 것조차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이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채사장의 필력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내공이 느껴진다. 

은밀하게 숨겨놨던 내면의 광활한 우주를 엿보고 그 우주를 지침 삼아 삶과 죽음에 대한 범세계적 환상을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일. 그리고 죽음은 극복해야 할 절망의 순간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지금 서 있는 땅의 단단함을 느끼는 작업인 것이다.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말한다. "겁내지 마라, 두려워 마라, 네 앞에 선 타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라.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라질 것이고, 서로를 알아갈 시간은 지금뿐이라는 것을."

 


“이야기는 나와 세계를 관계 맺게 하는 도구다. 우리는 날것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어떤 안경이 되었든 반드시 접어들어야 하고, 그 안경의 색깔이 만들어내는 명도와 채도 안에서만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나에 의해 구성된 이야기는 나의 세계의 진실성을 방영할 뿐이다. 그것은 타자의 세계를 재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고, 세계 전체를 기술하는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없다.”-Page.142-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