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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한 기독교인의 비이성적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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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은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앙드레 지드의 대표 저서이다. 앙드레 지드의 자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이 소설은 1909년에 발표됨과 동시에 서구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윤리관은 기독교적 윤리 의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는 종교적 교의가 부여한 정신적 압제로 인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복 추구권이 억압당하는 상황을 고발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종교적 규율이 가져오는 위선과 비극을 그렸다.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으로 일그러진 삶

주인공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를 지극히 사랑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만큼은 진실하고 순결했으며 이러한 순결만큼 그들이 결혼해서 함께하는 행복은 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독히 청교도적인 알리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롬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제롬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제롬을 사랑하는 만큼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어야만, 하느님의 뜻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롬을 향한 자신의 마음은 지상의 하찮은 것이기에 인내의 대상이다. 엘리사에게 사랑과 삶, 그리고 행복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제와 인내를 통해 하늘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미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롬을 향한 마음은 커져만 가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그녀 안의 내적 갈등은 그녀를 지치고 야위게 만든다.

그런 엘리사를 앞에 두고 제롬은 괴로워한다. 서로를 갈망하는 마음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명징하지만, 엘리사의 청교도적 이상(理想)으로 인해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는 엘리사가 두렵고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을 잊기 위해 그녀 주변을 채웠던 제롬과 관련된 물건들이 하나씩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제롬은 그것을 눈치채고, 더욱더 깊은 절망감과 함께 더 이상 예전의 엘리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싸움은 결국 정신적인 피로 끝에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다. 알리사는 미덕으로써 자기 자신을 구속하고, 욕망을 자기희생의 실천으로써 극복하려 한 나머지 일체를 상실하고 만다."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은 등한시한 채,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기 절제와 희생만을 추구하다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엘리사의 삶은 얼마나 기구한가. 자신의 사유와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외부에서 주어진 가치 체계를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행태는 살아 있음에도 죽어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프랑스 철학자 미쉘 푸코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구조주의자임과 동시에 해체주의자였던 푸코는 "그 어떤 도그마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는 독단적인 신념이나 가치관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자, 사유하는 인간이 보상받는 정신적인 자유로움이다. 인간이 목표하는 자유의 가치는 믿음의 영역에 속해있지 않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한편으론 굉장히 느린 책이다.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읽게 된다. 속도감 없는 전개는 살짝 하품이 나오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속도감의 추구는 사유의 부재와 동의어이기에 이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역할은 독자로 하여금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그녀가 모르도록 하는 것이 한층 값진 덕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나는 독한 술 같은 일종의 겸양에 도취되어 있었고, 오! 자신의 쾌락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나에게 무슨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면 어떤 일에도 만족을 못하는 버릇에 길들여졌다. -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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