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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결정장애요? 그건 장애에 대한 차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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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인가?

차별주의자면 차별주의자지,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무슨 뜻인 걸까? 언뜻 보면 모순적인 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단어는 생각보다 매우 밀접하게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말속에 차별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가 차별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된 결정적 단어는 '결정장애'였다. '결정장애'란 단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흔한 단어지만, 그 의미를 해체시켜보면, 무언가에 '장애'를 붙인다는 건, 장애는 곧 '부족함' '열등함'이란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우리 스스로 장애란 단어에 차별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장애를 '나쁜 것' '열등한 것'으로 규정짓는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장애를 향해 차별적인 시선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처럼 다수가 내뱉는 사소한 것들 속에 존재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상적인 대화 속에 숨어있는 차별주의적 폭력성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
"내가 원래 결정장애가 심해서..", "요즘 얼굴이 너무 타서 동남아 사람 같아", "여자들이 원래 수학에 좀 약하지 않나?"
그렇다면 당신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평등이란 가치를 추구하면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우리는 다수란 그룹의 일원으로 관습과 편견에 사로잡혀 깊게 사유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유의 부재는 다수 너머의 세계에서 편견과 폭력을 낳는다.

다수와 소수, 그리고 평등에 관하여

성소수자, 다문화 가정, 장애인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의 주된 골자다. 이들 소수자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 구성원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소수라는 이유로 많은 부분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사회 인프라를 자유롭게 누릴 권리, 부당함을 소리 높여 고발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멸과 좌절,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위협을 받는다. 용기있는 누군가가 사회를 향한 날 선 비판을 시도하지만, 사회에 불만만 가득한 노력하지 않는 개인으로 낙인만 찍힐 뿐이다. 평등의 가치는 말살되고, 소수의 고통은 다수의 이익과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방해꾼으로 전락한다. 약 200여 년 전 서구 사회에서 출현한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여전히 우리사회를 만들어가는 거대한 동작메커니즘이며, 민주주의는 중우 정치로 둔갑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차별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며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우리가 외치는 평등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지 점검을 해봐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특권이자 불평등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p.171-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의 전환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일에 능하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기준과 구분을 발생시키고, 배제와 배척을 낳는다는 점이다. 정상과 비정상인을 경계 짓고, 비정상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한다. 한나 아렌트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나치군의 잔혹성은 바로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의 한계이자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누구나 히틀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인정해야만 한다.

매일 인터넷에서 서로에게 끝도 없는 폭언을 퍼붓는다. 익명성에 숨어 자신의 무지함과 잔인성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사유의 불능성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광기로 진화하면서 폭력성을 수반한다. 다양성의 추구는 누구나 희망하지만, 정작 자신은 전체주의의 일부분에 사로잡혀 특권층에 머물며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만을 할 뿐이다.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 자신도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말이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이 세계는 저마다 모습이 다르듯 무한에 가까운 차별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할 것은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사고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끝.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단순히 이해관계의 경합에서 다수가 승리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집단 간의 합의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의 원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동의는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본 원칙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누군가를 차별해야 한다는 다수의 주장을 수용해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 원칙은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여야 한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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