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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은의 <도스토예프스키> "우리가 몰랐던 대문호의 삶,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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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러시아 태생의 대작가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숱한 불멸의 고전을 집필한 대문호이다. 박영은의 <도스토예프스키>에서는 작가의 삶을 반추하며 그가 어떻게 불멸의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는지 그가 겪었던 삶의 흔적을 추적한다. 유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고통의 트라우마, 죽음의 심연에서 살아 돌아온 사형 체험,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만성적 간질환 등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경험하고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예술적 언어로 옮겨짐과 동시에 그가 집필한 소설 속 인물들에게 그대로 투영되면서 소설은 엄청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만일 그의 삶이 대체로 순탄했다면, 과연 현재의 우리가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기억할 수 있을까. 저자 박영은의 이야기처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죽음과 탄생은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동작한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거시적 관점에서 죽음과 탄생을 하나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복과 불행 역시 동의어이자,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반추해보면 명징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

폭군이었던 아버지를 결코 사랑할 수 없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하인과 농부들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한 사건을 겪으면서 그의 영혼에 씻을 수 없는 큰 상처가 남는다. 그는 아버지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평생을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려야했다. 때문에 그는 한평생 부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함구했다. 그러나 말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필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집필하면서 소설 속 '표도르 카라마조프'란 인물에 자신의 아버지를 대입하면서 평생을 피해왔던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해방시킨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삶의 끝자락에서 경험한 사형 체험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은 시절 반사회적인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에 의해 체포된다. 황제는 당대 지식인들을 혼쭐내줄 목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연극을 꾸민다. 총살 몇 초전 황제의 명령으로 긴급하게 사형 집행을 취소하는 것이 바로 황제의 계획이었다. 이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삶의 끝자락에 무한한 시간의 확장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순간의 감정을 소설 <백치>에 예술적 언어로 녹여낸다. 죽음 직전 남겨진 5분 동안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의식과 감각을 끌어모아 현재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느낀 단 5분은 온몸의 감각 세포가 깨어나 이 세계를 온몸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내는 무한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만성적으로 앓았던 간질환

도스토예프스키는 만성적으로 앓았던 간질환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은총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정기적으로 일으키는 발작은 육체적 고통이 가해지는 끔찍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순간이야말로 의식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면서 현실 너머의 세계와 조화가 되는 순간이자 황홀경에 빠지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순간의 체험을 소설 <백치>에서 므이쉬킨 공작을 통해 '지상에 펼쳐진 듯한 천국의 상태'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간질이 현실 너머의 비가시적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가 인생에는 도움이 되는 요소이기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의 태도에는 초인적인 긍정의 힘이 있다. 어떤 어려움도 그의 작품 속에 녹여내면서 모든 상황을 역젼시킨다. 즉,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것이다. 

 

"극심한 가난과 죄의 심연, 미칠 듯한 도박의 흥분상태와, 끓어오르는 욕망,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과 수치심, 사지가 뒤틀리는 간질의 고통, 사랑했던 자식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 그는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p.88-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저자의 말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사람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가 1881년 1월 28일 마지막 숨을 거두었을 때,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은 큰 슬픔이자, 평생의 고통을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시킨 대작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년에 목 놓아 외친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전 인류가 하나 되어 사랑을 실천하는 보편적인 인간이 되는 것. 나는 이 부분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모든 것들이 하나로 귀결되는 지점은 우리가 흔하디 흔하게 사용하는 바로 '사랑'에 대한 가치가 아닐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 바로 이러한 진리를 도스토예프스키가 눈을 감은 뒤에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2020/02/29 - [책 속의 책] - [책갈피] 박영은의 <도스토예프스키>

2020/02/26 - [책 속의 책] -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을 응시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사형 체험

2020/02/13 - [책 속의 책] - 도스토예프스키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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